_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나는 달걀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주인 여자가 나왔고,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잘 끌 수 있도록 그녀가 내 뺨을 한 대 올려붙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 곁에 쭈그리고 앉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고 이런 말까지 했다.
"너 참 귀엽게 생겻구나!"
처음에 나는 그녀가 나를 잘 구슬러서 달걀을 도로 찾으려고 그러는 줄 알고 호주머니 깊숙이 든 달걀을 더 꼭 쥐었다. 그녀는 벌로 나를 한 대 갈겨주기만 하면 되었다. 실제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서서 진열대로 가더니 달걀을 하나 더 집어서 내게 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한순간 나는 희망 비슷한 것을 맛보았다. 그때의 기분을 묘사하는 건 불가능하니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나는 그날 오전 내내 그 가게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며 서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따금 그 맘씨 좋은 주인 여자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는 손에 달걀을 쥔 채 거기에 서 있었다. 그때 내 나이 여섯 살쯤이었고, 나는 내 생이 모두 거기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겨우 달걀 하나뿐이었는데...
나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어느 집 대문 아래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사람이 아프면, 눈이 커지면서 표정이 풍부해진다. 로자 아줌마의 눈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이유도 모른 채 매를 맞으면서 자기를 때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개의 눈 같아졌다.
내가 세번째로 카츠 선생님을 보러 갔을 때, 그는 미국에 식물인간 상태로 십칠 년째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 사람은 약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데, 세계 신기록이라고 했다. 모든 세계 신기록은 다 미국에서 나온다. 카츠 선생님은 이제 우리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병원에서 간호를 잘 받으면 몇 년은 더 살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모모야, 그들은 나를 억지로 살려놓으려 할 거다. ... 내 엉덩이를 삼십오 년 동안 손님들에게 내주었는데, 이제 와서 또 의사들에게 내주고 싶지는 않아. 약속해주겠지?"
"약속해요."
"카이렘?"
"카이렘."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란 뜻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무슨 약속이라도 했을 것이다. 아무리 늙었다 해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