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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l 30. 2019

행복은 요물이다

 _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재미있었던 부분을 소개한다. 아래 글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기억


나이가 많은 하밀은 현명하다. 항상 좋은 이야기를 모모에게 들려준다. 그에게 기억력은 행복의 근원이었다. 옛날 이야기를 되뇌고, 모모에게도 이야기한다.


처음 만났을 때도 할아버지는 꽤나 늙어 있었는데, 그후로도 계속 늙어가고 있었다.
"하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매일 웃고 있어요?"
"나에게 좋은 기억력을 주신 하느님께 매일 감사하느라고 그러지, 모모야."
내 이름은 모하메드지만, 사람들은 나를 어린애 취급해서 항상 모모라고 불렀다.
"육십 년 전쯤, 내가 젊었던 시절에 말이야, 한 처녀를 만났단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지 ... "


하밀은 기억력과 시력을 차츰 잃어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까지 잊어버리는 상황에 이른다. 그래도 괜찮다.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순수


못 배우고 가난한 이민자들과 함께 산다. 돌봐주는 로자도 언제나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이 책의 표현의 의하면, '엉덩이로 먹고 사는' 성판매 여성들도 자주 어울리지만 어느 누구도 모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그에게 상처를 주는 건, 순진하고 순수한 있는 집 자식의 한마디다.


두 아이는 즉시 나를 훑어보았다. 큰아이는 열 살쯤 되어 보였고, 작은애는 예닐곱 살쯤 되어 보였는데, 작은애가 나를 생전 처음 보는 물건 구경하듯이 바라보다가 말했다.
"얘는 왜 이런 옷을 입고 있어?"
나는 웃음거리나 되자고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거기가 우리집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큰아이는 나를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내게 물었다.
"너 아랍 애니?"
제기랄, 아무도 나를 그런 식으로 대놓고 아랍놈 취급하지는 않았다.


이해


로자는 갈수록 이상해진다. 모모는 그녀를 돌보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한다. 어린 아이가, 이해심만큼은 사랑만큼 크다.


로자 아줌마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떨고 나서 나한테 괜히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를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목숨은 그녀에게 남아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종교


아랍인인 모모에게도, 유태인인 로자에게도 고유의 문화가 있고, 종교가 있다. 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모모는 로자와 함께 유태어로 기도를 한다. 오랜기간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하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이러한 장면이 놀라울 게 없지만, 아마 외국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책에서도 다른 인물들은 놀란다.


"그리고, 혹시 떠나기 전에 로자 부인이 정신이 들면 내가 축하한다고 전해주렴."
"그럴게요. '말토브'라고 전해드릴게요."
그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유태어를 할 줄 아는 아랍인은 아마 세상에 너밖에 없을 거다."
"네, 미토르니히 조르겐."
유태어를 모를까봐 말해주겠는데, 그건 '세상에 원망할 건 없다'는 뜻이다.


미신


아프리카 카메룬 출신 왈룸바는 노인을 공경한다. 미신 때문이다.


프랑스와 같이 크고 아름다운 나라에서는 노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노인들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는데, 노인들은 더이상 일도 할 수 없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으므로, 그저 방치해둔다는 것이다.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종족 단위로 모여 사는데 노인들이 인기가 많다고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노인들이 죽어서도 종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개인주의 때문에 종족이 없다.


어찌보면, 미신을 믿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현대과학으로 무장한 프랑스 사람들보다 더 노인을 잘 돌보고 환자를 보살핀다. 환자를 돌보는 아프리카 방식은 아래와 같다.


왈룸바 씨는 이상한 악기를 들고 있었는데, 모양이 하도 특이해서 어떻게 묘사할 수조차 없다. 모세와 나도 합세해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유태인 노인네 주위를 맴돌며 춤추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깨어나는 기미를 보였기 때문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우리는 악마를 내쫓았고 로자 아줌마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기 주위에서 상체를 벗고 얼굴에는 푸르고 희고 노란 칠을 한 흑인들이 식인종처럼 괴성을 지르면서 춤추고 있는데다가, 왈룸바 씨는 또 그 이상한 악기를 연주하는 걸 보고, 로자 아줌마는 너무 놀라서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다가 나와 모세를 발견한 그녀는 그제야 조금 진정되는지, 우리에게 갈보 새끼들이니 얼간이들이니 하며 욕을 퍼부었다. 그것은 그녀가 확실히 정신이 돌아왔다는 증거였다. 우리는 다 함께 기뻐했다.


아프리카인들은 춤을 추는 것 외에는, 주사 하나 놔주지 못한다. 반면 프랑스의 현대 의사는 어떤 주사도 놓을 수 있지만, 환자가 원하는 주사만큼은 놔주지 않는다. 안락사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복


불법과 타락의 소굴에서 자라는 모모는 당연히 마약도 쉽게 접한다. 그런데 하지 않는다. 고통에 익숙해진 아이는 이미 생즉고의 진실을 알아버린 듯하다. 행복에 굴하지 않고, 행복에 구걸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 꾸역꾸역 사랑을 낳는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하긴 오죽이나 간절했으면 주사를 맞았을까만은 그따위 생각을 가진 녀석은 정말 바보 천치다. 나는 절대로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몇 차례 마리화나를 피운 적은 있지만, 그래도 열 살이란 나이는 아직 어른들로부터 이것저것 배워야 할 나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좋다.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어차피 녀석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신경도 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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