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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ug 06. 2019

배운 사람의 불평불만

 _이용재 「외식의 품격」

지식인의 짜증. 배운 사람의 불평불만. 이 책을 보고 느낀 감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음식과 관련해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 이용재의 책이다. 식문화에 대해서 꾸준히 글을 써왔고, 지금도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등에 연재하고 있다.



맥주, 샐러드, 수프, 파스타, 스테이크, 햄버거, 치즈, 케이즈 등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다.


음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참으로 다양한 소재가 짜증을 유발한다. "쫄깃한 홍합(현실 : 너무 익힘. 해산물은 절대 쫄깃하면 안 된다), "맛있게 맵다"는 짬뽕(현실 : 수입 캡사이신 액을 듬뿍 쏟아 부음. 게다가 매운맛은 통각, 즉 상처로 인한 고통이니, 맛있을 수가 없다), 즉석에서 레몬 세개로 짜주는, 인심 후한 레모네이드(현실: 변질을 막기 위해 껍질에 씌운 왁스는 벗겼을까?) 등 가지각색이다. 울어야 할 시점에 웃고, 칭찬해야 할 시점에 화를 낸다. 아니라고 말해도 믿지 않는다. '입맛은 주관적이니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입맛의 영역에서 평가도 불가능한, 기본도 안 지켜 못 만든 음식을 놓고 그렇게들 말한다. 말을 섞기조차 피곤하다.


가차없이 불만을 토로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입맛의 차원으로 환원해버리면 아무것도 평하지 못한다. 음식에는 평해야 하는 객관적인 차원의 문제도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대략 동의한다. 아마 나 같은 독자보다 외식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보면 더 도움이 될 거다. 저자는 이러한 글을 통해서 한국의 식문화가 나아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목표가 있다. '상향평준화'다. 우리의 생활수준은 절대 낮지 않다. 고급 명품이며 수입차 같은 것들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를 위해 다니고 먹고 만들고 보고 읽고 쓴 경험을 한데 아울러 정리한 기준을 이 책에 담았다.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음식 투정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나라 전체를 꿰뚫는 정서다보니 '맛없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제 그럴 때도 되었다. 그래야 나아진다. 이 책이 맛없는 음식을 맛없다고 말할 수 있는 지식과 자신감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글의 대부분은 불평불만이지만, 그래도 몰랐던 사실을 알려준 부분, 나름 유용한 상식들도 있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샐러드


샐러드를 맛있게 하려면 물을 잘 빼야 한다. 드레싱과 섞이면 맛없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차 싶었다.


먼저 채소 밖이 물기부터 처리하자. 깨끗이 헹궈야 하지만, 그 물까지 먹을 필요는 없다. 행군 다음 물기를 완전히 털어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이파리 주름 사이사이에 맺힌 물방울은 손으로 털어도 박멸이 불가능하니 도구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래서 채소 탈수기가 있다.


맞다. 채소 탈수기 샀었는데.. 안쓴지 20년 정도 된 것 같다.


치킨


한국 맥주 맛없다. 한국 파스타 맛없다. 한국 샐러드 맛없다. 이런 이야기를 지나서, 치킨 비판으로 넘어간다. 올리브기름으로 치킨을 튀기면 발연점도 낮고 특유의 맛이 치킨의 맛을 방해한다고 한다.


건강을 위해 올리브기름으로 치킨을 튀긴다는 회사에 취재차 전화를 걸어, 온도와 맛에 초점을 맞춰 질문을 던졌다. 물론 엄청나게 큰 무리가 따르는 건 아니지만 발연점이 섭씨 210도로 낮은 엑스트라 버진, 즉 초벌로 짠 올리브기름이 가격까지 감안했을 때 많이 쓰는 콩기름(230~255도), 유채기름(205~240도)보다 튀김이라는 조리 방식 자체에 더 낫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요지를 담은 질문에 업체의 소비자 상담센터 직원은 '특수 처리된 기름을 써서 문제가 없다. 그 이상은 말해줄 수 없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스테이크


스테이크 부분에서는 (다른 파트에서 같이) 매우매우 흥분한다. 스테이크에 육즙을 가둔다는 표현이 흔해서, 정말 아니라고 외치고 싶은가 보다. 뮤비명에 새기고 싶을 정도다.


갈릴레이가 그랬던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물론 스테이크가 지동설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지만, 나는 외치고 싶다. '그래도 육즙은 가둬지지 않는다!'라고. 묘비명으로 새기기로 이미 마음도 굳게 먹었다. 자금 사정에 여유가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이 책이 잘 팔리면 유언장을 쓰고 공증도 해둘 생각이다.


일단 고기를 지진다고 해도 육즙은 가두지 못한다고 한다.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들리는 마야르 반응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단백질이 고어텍스가 아닌 이상 방수, 그것도 완전 방수란 불가능하다. 아무리 겉을 잘 지져도 육즙은 빠져나온다.
대다수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고기의 겉면을 지지는 건 여전히 아주 중요하다. 맛 때문이다. 열을 통해 탄수화물이나 아미노산이 반응해 검정색에 가까운 갈색으로 변하고, 그 색깔만큼 맛이 든다. 마야르 반응 때문이다. 프랑스 화학자 루이 카미유 마야르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거의 모든 요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스테이크는 두껍고 기름진 걸 사서, 아주 고온에 튀기듯이 구워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을 보고 나서 스테이크를 굽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초콜렛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것도 재미있었다.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50% 세일을 하는 바람에 아이스크림까지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설탕


커피도, 케이크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신 없이 욕한다. 설탕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한편 흑설탕 또한 정제하지 않은, 백설탕의 대안이 아니다. 물론 정제과정을 도중에 멈춰 당밀을 분리하다 말면 흑설탕이 된다. 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요즘은 아예 전부 뽑아내 백설탕을 만든 뒤 당밀을 다시 더해 진하고 옅은 흑설탕을 만든다.


위스키


몰트의 정체도 알았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재료는 단순하다. 이름 속에 답이 있다. 몰트, 즉 싹을 틔운 보리다. 맥아라고 일컫지만 사실 더 좋은 이름이 있다. 엿기름이다. 식혜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럴싸하게 들리는 '몰트'보다 더 입에 붙는다. 물론 식혜와 만드는 원리도 같다. 곡식의 싹을 틔우면 전분이 당으로 바뀌니 이를 효모가 양분으로 삼아 발효시킨다. 결국은 맥주와도 같은 재료와 과정, 홉을 넣지 않은 맥주를 담가 증류로 도수를 높인 게 바로 위스키다. 스코틀랜드라면 압도적으로 엿기름이지만 수수, 밀, 옥수수 등, 다른 곡식으로도 얼마든지 위스키를 빚는다. 바로 그레인위스키다.


위스키를 음미하기 위해서는 전용잔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나도 마음에 드는 잔이 있어서 자주 마신다. 저자는 위스키와 굴이 잘 어울린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수박 안주와 위스키를 같이 마시는 걸 좋아한다.


와인


저자는 와인은 한식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자주 그렇게 먹지만) 설득력이 있다.


서양음식에서는 1음식, 1와인의 원칙을 따른다. 다른 요리에 다른 와인이다. 각각의 맛이 다르니 짝도 달라야 하는 논리로, 단품의 요리가 시간차를 두고 나오는 코스 구성이니 적용도 쉽다. 한 입 거리의 요리가 줄을 이어 나오는 맛보기 코스에 와인을 추가하면, 각 요리에 맞는 종류가 한두 모금 정도 딸려 나온다.
하지만 한식의 구성은 한 상 차림이다. 모든 음식이 한꺼번에 상에 올라야 한다. 맛도 온도도 제각각인데 그 폭도 꽤 크다.


★★★★ 배운 사람의 불평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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