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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ug 08. 2019

사랑과 이혼 전문가

 _곽정은 「내 사람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 형식과 내용 다 가볍다.


저자 곽정은은 많은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고 이에 대한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사람이다.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는 게 직업이다 보니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것 같다. 만났던 특이한 사람들에 대해 적은 글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사랑했거나 사랑할 뻔했던 사람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이혼을 통해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짧은 만남과 이별에서도 배울 게 많은데, 결혼과 이혼은 오죽할까.


서류가 정리되던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지만, 그는 어느새 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 속 '증오' 폴더에서 '스승' 폴더로 이동해 있다. 서로에 대한 과한 기대와 방향성을 잃은 욕심으로 인해 고통을 주고받았던 날들을 내 인생에 다시는 만들지 않으리라는 가르침을 준 스승으로 말이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개정판이 아주 이쁘다. 내가 읽은 건 알라딘에서 저렴하게 산 초판이다.


이혼을 하고 나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있다. 바로 "결혼하셨어요?"라는 질문이다.


결혼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라면 그렇다고 답해야겠고, 지금 결혼한 상태냐고 묻는 거라면 아니라고 답해야겠지? 하지만, 첫 번째를 궁금해 하는 건지 두 번째를 궁금해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순간적으로 어느 쪽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결혼했었어요" 혹은 "한 번 갔다가 왓어요"라고 솔직히 말해도 문제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당황해 하는 상대방의 눈빛을 보는 것도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기 대문이다.


저자는 "싱글이세요?"라는 질문을 선호한다고 한다. 역시 영어가 답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한다.


아찔해 하고 있던 그 순간, 그는 "곽 기자에게 주고 싶어 아까 샀어요"라며 수줍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표지가 예뻤던 에세이 한 권.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선물까지 준비한 그의 마음에 순간 마음이 동했다. 그렇게 촛불 하나 켜두고 그의 레스토랑에서 단둘이 마시는 와인의 향이란 얼마나 달콤했는지. 그날따라 파스타의 빨간 토마토 소스는 어찌나 섹시하게만 보이던지.
분위기가 무르익고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묘한 긴장이 감돌던 그 때, 잠시 와인을 가지러 그가 테이블을 더났고, 난 아까 그 책 표지를 무심코 살짝 들어올렸다. 아뿔싸! 거기엔 펜으로 꼭꼭 눌러쓴 여자의 손글씨가 쓰여 있었던 거다. 게다가 끝부분엔 날짜까지 또박또박.

돈 후안, 당신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20xx년 6월 20일. JH.

오, 세상에. 뭐 이런 거지 같은 자식이 다 있담. 그는 그를 좋아하는 어떤 여자의 가슴 떨리는 선물을, 표지 한 장 들춰보지도 않고 다른 여자에게 '토스'했던 거였다.


이런 사소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실명을 쓸 수는 없으니, 대부분 저자가 마음대로 만든 별명이다. 「이달의 남자」와 비슷한 방식이다.



연예인 인터뷰를 부탁하다보면, 갑질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그 일 이후로 나는 조금이나마 변했다. 설사 내가 큰 잘못을 했더라도,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 때라도 나 자신의 무언가를 과하게 내어주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이건 사과의 진정성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남에게 폐를 끼칠 때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를 때도 있는 거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의 존엄을 다 포기라도 한 듯 행동한다면 어느 시점에선가는 내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 스스로를 잃지 않는 훈련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우리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시비 걸기'를 통해 스스로의 권력을 시험해보고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칭 후회의 달인라는 그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한 연예인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다. 무언가에 대해 후회스러운 감정이 든다는 것은, '그냥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하지만 자신이 한 일이라는 게 분명히 있는데도 자꾸만 다른 선택에 대해 뒤를 돌아본다는 건, 결국 애초에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서도 충분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해도 내가 한 선택은 그 나름대로 타당한 것이었고 그래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는 걸 스스로가 인정해주면 안 되나?


저자가 책을 읽는 걸 좋아하고, 비교적 읽기 쉬운 잡지 기자라 그런지 읽기 편하다. 방송에서 말하는 모습을 보더라도 문장이 항상 정제되어 있었다. 똑똑한 사람인 건 분명하나 온통 사랑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뿐이라서 요즘 내 관심사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가볍고 재미있는 글을 읽고 싶을 때는 아주 좋은 책이다. 머리 식히는데 딱이다.


★★★★ 쉽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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