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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ug 12. 2019

하늘의 하늘

 _테드 창 「바빌론의 탑」

하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만일 탑을 쌓는다면, 아주 높고 길게 탑을 쌓는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상상을 글로 옮겼다.



대지에서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중력이 약해지고 공기도 옅어지고 숨을 쉴 수 없다는 상식은 잠시 접어두자. 다른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 이 정도는 넘어가자.


주인공은 광부다. 돌을 부수고 길을 뚫는다. 그는 바빌론의 탑을 오르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바로 그 탑이다. 소설에서는 성경보다 훨씬 더 높게 쌓았다. 어느 정도로 높게 쌓았느냐면, 달도 지나고 태양도 지나고 우주의 끝에 다다랐다. 이제 우주의 끝을 뚫고 나갈 차례가 되어서, 광부인 주인공이 탑을 오르는 것이다. 그 과정이 아주 흥미롭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달이 뜨고 지는 고도와 완전히 동일한 위치에 도달했다. 첫 번째 천체의 높이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얽은 자국이 있는 달의 표면을 바라보았고, 그 어떤 것에도 지탱될 필요가 없는 그 당당한 움직임에 감탄했다.
그다음은 태양의 차례였다. 여름이었기 때문에 해는 바빌론에서는 머리 바로 위에서 뜨다시피 했고, 그들이 지금 있는 고도에서는 탑 부근을 지나갔다. 열기가 보리알을 익혀버릴 정도로 강렬했기 때문에 탑의 이 구획에 사는 가족은 없었고 발코니도 없었다.
마침내 그들이 태양의 높이를 지나 그 위로 올라오자 아래쪽을 지날 때와 같은 생활이 돌아왔다.
이제 낮의 햇살은 위를 향해 비쳤다 엄청나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아래로부터 비쳐오는 햇살을 받기 위해 발코니의 판자는 모두 철거되어 있었고, 남은 통로 위에 깔린 흙 위에 심어진 채소는 햇빛을 받기 위해 방향을 바꿔 옆과 아래를 향해 자라고 있었다.


탑을 오르며 주인공은 고민한다. 이렇게 높게 올라가도 되는걸까. 혹시 신을 화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탑을 오르는 여정의 이 단계에서 힐라룸은 몇 번이나 절망감에 사로 잡혔다. 알고 지내던 세계를 떠나보내고, 그 세계와 소원해진 듯한 느낌이 그를 괴롭혔다. 대지는 불충의 죄로 그를 추방하고, 하늘은 그를 거부하는 기분이었다. 야훼가 어떤 징조를, 인간의 이 역사를 승인한다는 확답을 내려주기를 그는 갈망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영혼을 결코 따뜻이 환영해주지 않는 이런 장소에 어떻게 계속 머물러 있는단 말인가?


제관들이 야훼를 향한 기도를 선도했다. 그들은 이토록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신에게 감사했고, 그 이상을 보고 싶다는 자신들의 욕망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오래전에 대홍수가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그 대홍수, 노아의 방주가 나오는 그거 맞다. 그래서 사람들은 걱정한다. 하늘에 구멍을 내는데 혹시 물이 쏟아질까 봐. 그래서 나름의 역학적 조치를 취하면서 조금씩 단계적으로 구멍을 뚫는다. 그래도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탑은 그 어떤 저수지와도 떨어져 있는 중간 지점에서 하늘의 천장을 만난 듯했다. 이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수문이 눈에 띄었다면 그들은 그것을 깨고 저수지에서 물을 비우는 위험을 무릅써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시나르에는 계절에 걸맞지 않은 비가. 그 어떤 겨울비보다 더 세찬 비가 내렸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범람했을 것이다. 저수지가 텅 비면 비는 멈추겠지만, 야훼가 인간을 벌해, 탑이 무너지고 바빌론이 진흙 속에서 녹아 없어질 때까지 비가 계속될 가능성은 언제나 있었다.


주의!!! 여기부터는 결말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면 넘겨도 되지만, 어차피 안볼게 뻔하니까 그냥 읽으세요.


하늘에 구멍을 내면서 올라가다 결국 저수지를 건드렸는지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주인공은 어찌어찌 그 구멍을 통해 더 높은 하늘로 헤엄쳐 올라갔다. (역시 수영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느 동굴이었다.


하늘은 지상과 마찬가지인 것일까? 야훼는 이런 곳에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곳은 야훼의 피조물 안에 존재하는 다른 영역, 인간 세계의 위에 존재하는 또 다른 대지에 불과하고, 야웨는 훨씬 더 높은 곳에 살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찌되 것인지 허둥지둥하다 주인공은 드디어 알게 된다. 자신이 하늘을 넘어서 도달한 곳이 출발지였던 대지라는 것을.


그는 시나르에 있었다. 대지 위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는 하늘의 저수지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지상에 도착했다. 야웨는 그가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도록 그를 이곳으로 되돌려놓은 것일까? 그러나 힐라룸은 야훼가 그의 존재를 깨달았다는 어떤 징조도 보지 못했다.


이 소설 속의 세계는 종이를 돌돌 만 것 같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맨 위와 맨 아래가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원통형 인장. 부드러운 점토판 위에서 그림이 새겨진 원통형의 인장을 대고 굴리면 원통이 남긴 자국은 하나의 그림을 형성한다. 점토판 위에서는 각자 반대편에 서 있는 두 인물도 원통 표면에서는 나란히 서 있을 수 있다. 세계는 이처럼 원통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은 탑을 쌓고, 하늘에 구멍을 뚫어도, 신이 아무런 벌을 내리지 않은 이유를 이제 이해가 된다.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인간은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몇십 세기에 걸쳐 역사한다고 해도 인간은 천지창조에 관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통해, 인간은 야훼의 업적에 깃든 상상을 초월한 예술성을 입력하고, 이 세계가 얼마나 절묘하게 건설되었든지 깨달을 수 있다. 이 세계를 통해 야훼의 업적은 밝혀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다.


하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위로 올라가도 신은 만날 수 없다. 어쩌면 신은 우리의 왼쪽, 어쩌면 우리 안에, 어쩌면 대지에 존재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없을 수도 있다. 오래전에 벌어졌던 대홍수도 실은 분노한 야훼의 물뿌리기가 아니라 하늘에 구멍을 내다 물을 뿌려버린 어리석은 인간들의 해프닝일 수 있다.


하늘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결국 신을 이야기하고, 인간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센스. 대단하다.


★★★★ 센스 있는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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