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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ug 23. 2019

사서 30년만 묵혀두자

_강준만 외 「미디어와 쾌락」

습관적으로 책을 내는 강준만이 또 책을 냈다. 지금 낸 것은 아니고 2003년이다. 강준만은 대학에서 미디어를 강의하는 교수고, 학생들이 매번 리포트를 제출하는데, 그냥 지나가기 아쉬웠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 리포트를 모아서 가공하고, 강준만이 덧붙여 책을 만들었다.



주제는 미디어다. 신문, 방송, 핸드폰, 인터넷 등 전반적으로 다룬다. 학생들의 의견이나 경험 등 사소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우리가 읽기에는 재미도 없고 색다를 것도 없다. 다만 우리 다음 세대가 읽기에는 재미있을 것이다. 사료적 가치가 있다.


나는 「한국 현대사 산책」을 쓰면서 1970년대의 한국인들이 언론과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 또는 소비하는지 그걸 꼭 밝히고 싶었지만 그것에 관한 기록은 전무했다. 당시 나의 이용 및 소비 행태를 중심으로 내 마음대로 창작해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건 비켜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후의 연구자들이 2002년의 한국인들이 언론과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 또는 소비했는지 알고 싶어한다면 무슨 자료를 참고하여야 할까?
 _강준만 「미디어와 쾌락」


학생들 글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강준만의 글 중 일부를 소개한다.


인터넷


인터넷이 처음 등장하고 일상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인 연구들이 쏟아졌다. 아래와 같이, 인터넷 소통을 많이 하면 진짜 (오프라인) 소통은 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참가자들은 연구 중에 실제로 이메일과 채팅방을 사용했지만, 많은 시간을 인터넷에서 보내면 보낼수록 가족이나 친구와 직접적인 접촉 기회는 더 줄었다고 말했다.
 _로버트 라이시 「부유한 노예」
카네기 멜론 대학에 있는 인간과 컴퓨터 관계 연구소의 로버트 크라우드 사회심리학 교수는 '실험 결과 인터넷에서는 피상적인 관계를 쌓아 가는 경우가 더 많으며, 이로 인해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느낌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얼굴을 보지 못하고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심리적인 안정과 행복감을 느끼는 데 필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_로버트 라이시 「부유한 노예」


10년도 더 지난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이야기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거리를 두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시각


강준만은 항상 비판적 시각을 강조한다. 미디어에 나오기만 하면, 그냥 보고 웃어넘기는 모든 것에 대해 비평을 하니, 피로감을 호소하는 독자도 있다. 이에 대해 변명한다. 자신이 미디어 전공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예컨대, 소설이나 시는 어떨까? 신문방송학도는 그건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즐기려 들겠지만, 문학도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신문방송학과 학생이 국문학과나 영문학과 과목을 수강하게 되면, 그냥 즐기게 될 문학 텍스트를 이리저리 분석하고 해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해, 의아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_강준만 「미디어와 쾌락」


그리고 비판적 시각을 가진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미디어를 즐기는데 아주 방해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남성 산부인과 의사나 성형외과 의사는 여성의 육체를 보통 사람들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직업적 애환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사랑하는 여성의 육체적 매력에 대한 감수성마저 없을 거라고 볼 수 있겠는가?
 _강준만 「미디어와 쾌락」


지방신문


오만가지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강준만이지만, 특히 관심을 두는 것은 권력의 집중이다. 그래서 서울대 독식 문제, 영남 패권 문제, 수도권 집중 문제 등에 대한 책도 여러 권 냈다. 그러다보니 미디어에서도 지방신문이 외면 받는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재미있는 것은 해결방법이다. 시민운동과 결합해서 좋은 지방신문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문들이 도덕성을 갖게끔 상호 경쟁시키는 것은 어떨까? 신뢰받는 시민운동 단체가 기존 신문들 가운데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 가장 애쓰는 신문을 하나 골라, 그 신문에게 더욱 강력한 도덕성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 걸 전제로 하여 그 신문의 구독을 권유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렇다. 그 시민운동 단체는 구독 운동을 전개할 대상 신문과 협약을 맺는다. 그 협약은 그 신문이 그 신문의 도덕성에 대한 시민들의 이의 제기에 대해 지면을 통해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는 걸 명문화한다. 그걸 조건으로 하여 그 시민운동 단체는 그 신문 구독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_강준만 「미디어와 쾌락」


쉽지는 않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 대학생 리포트를 내가 돈 주고 사서 보다니. 사실상 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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