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Aug 26. 2019

일본여자를 말한다

 _유재순 「일본여자를 말한다」

일본 관련 책을 많이 읽었는데, 이 책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르포면 사람들의 육성을 직접 담아야 하는데, 이 책은 저자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내놓고 있으니, 명징하게 직조해낸* 르포는 아니다.


 * 명징하게 직조 :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기생충」을 평가하면 사용한 어휘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데다, 허세가 가득한 느낌이라서 사람들이 유행처럼 사용한다. 해당 영화평은 다음과 같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재미있었던 부분을 소개한다.


기모노


기모노 하면 노팬티로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에는 팬티를 입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노팬티인 이유와 이제 다시 팬티를 입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일각에서는 수십 년 전 도쿄 긴자에 있는 미츠코시백화점에 불이 났을 때,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의 희생이 커서 그후로 팬티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때 희생이 컸던 이유는 창문을 통해 뛰어내리도록 땅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놓았는데도 여성들이 뛰어내리지 못했다는 것.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수십 명의 생명이 희생된 것은 다름아닌 기모노 안의 노팬티 차림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사람들이 기모노 안에도 팬티를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냥 가설이다.


가라유키


해외에서 원정 성판매를 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범죄자들이 농촌 여성을 납치하여 동남아 등 외국으로 가서 성판매를 벌였다. 단순히 일부 사람들의 일탈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현상이었고, 경제에서도 큰 역할을 맡고 있었다.


비틀거리던 농촌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사회의 패악이었던 범죄자나 부랑아들이 자연스럽게 해외로 빠져나갔다. 일종의 인간쓰레들을 힘 하나 안 들이고 동남아에 수출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가라유키들을 중심으로 갖가지 새로운 형태의 직종이 생겨났다.
현지인의 하녀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잣집의 애첩이 된 여자도 있었다.


집단취직


우리나라에서 섬유공장 여성노동자가 경제를 일으켰듯이, 일본에서도 여공의 역할이 컸다. 재미있는 것은 집단취직이라는 것이다. 학교와 기업이 협약을 맺고 졸업생들을 그대로 취직시키는 방식이다. 한반도의 전쟁 때문에 군수물자의 수출이 늘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일지역, 동일기업끼리 단합하여 지방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소년·소녀들을 단체로 데려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각 지역의 직업소개소, 국유철도와 협의하여 집단취직열차를 운행했다. 이같은 '집단취직' 열차 운행은 1975년 3월에 폐지될 때까지 총 76회에 걸쳐 지방의 소년·소녀들을 조직적으로 데려왔다.


요타카


에도시대에는 매춘이 여러가지 종류가 있었다. 상류계급이 찾아가는 요시와라가 있고, 일반 상인이 찾아가는 후카가와, 배 위에서 매춘이 이루어지는 후네만주가 있었다. 그리고 에도시대를 성병의 시대로 만들었던 것이 바로 요타카 매춘이다. 길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매춘이었는데, 길거리가 정말 그 길거리다.


상인들이나 일반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이었는데, 말이 장소이지 순전히 길거리에서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거적을 깔고 머리에는 수건을 하나 달랑 쓴 채 몸을 팔았으니, 그 풍기문란이야 오죽했으랴.


시민운동


한국에도 이제는 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이 간혹 눈에 띄지만, 과거에는 거의 없었다. 일본에는 시민운동과 연계한 정치인이 많은데, 특히 여성 정치인의 경우는 대부분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운동을 할 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 이유에는 교통난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80퍼센트 이상의 지자체 여성의원들은 자가용이 아예 없다. 따라서 회의가 있는 날이면 자전거나 전철을 타고 시의원회관에 간다.



우리나라가 우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반면, 일본은 나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언어습관은 가치관을 반영하는데, 일본은 정말 나를 더 강조한다.


만약 동생이 형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형한테 얻어 맞았다고 하자. 이럴 때 한국 엄마 같으면 동생이 형 장난감 좀 가지고 놀았다고 대리냐고 형을 꾸중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 엄마는 전혀 반대이다. 왜 네것도 아니면서 형의 장난감을 만지냐고 동생을 호되게 나무란다.
일본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물건이 있다. 또한 자기의 물건을 지키도록 훈련받는다. 가령 이불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것이 된다. 우리나라처럼 형제가 함께 이불을 덮지 않는다. 만약 형제가 세 명이 있으면 아이들의 이불도 당연히 세 채가 된다. 설사 이 형제들이 한 방에서 모두 잔다 할지라도 세 채의 이불을 펴고 각자 자기 이불 속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한국에서처럼 삼형제가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평생 다른 사람과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많다. 부부가 더블베드를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은 부부간에도 각기 다른 이불을 덮고 잔다.


★★★★ 그런데 재미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