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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ug 29. 2019

지소미아는 가고 인섬니아가 찾아온다

지소미아GSOMIA 때문에 인섬니아Insomenia

자본주의의 장점은 무엇일까. 맛있는 걸 먹게 해주고, 안전한 지붕 아래에서 자게 해주고, 해외여행도 가게 해주고, 자유롭게 연애도 하게 해주고... 다 맞다. 내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장점은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을 막아준다는 데 있다.


한 대 때리고 싶어도 물어줄 돈이 무서워서 참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맞긴 맞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연결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자 욕망에 따라 열심히 일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아담 스미스의 말이 맞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이 욕구 때문이다.
 _애덤 스미스 「국부론」


전세계는 지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년 (2018년) 발표자료를 보면, 유명한 은행은 대부분 외국인 소유다. 정확히 말하자면, 6대 시중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평균 73.3%를 나타냈다.



단순히 외제차나 아이폰 같은 소비재뿐만 아니라, 내 월급이 왔다갔다 하는 금융분야까지 전부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는 미군 때문이 아니다. (아니 맞긴 맞는데) 그보다는 외국인 투자자들 때문이다. 전쟁이 나면 대한민국에 투자한 사람들이 손해보기 때문에, 손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남북 관계가 경직될 때마다 주가는 출렁이고, 우리는 이를 코리아 디스카운트*라 부른다. (반대로 미국의 군수산업은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넘어가자.)


 *코리아 디스카운트 : 남북의 대치 상황으로 인해 대한민국 기업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말한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남들이 돈을 벌어야 나도 돈을 번다. 그래서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질성


자본주의 이전을 생각해보자. 다른 부족이 있다면 약탈했다. 죽이고 노예로 만들었다. 타인, 나와 다른 존재는 정복의 대상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외국은 여행의 대상이고, 소비의 대상이다. 한병철의 말이 맞다.


차이에는 말하자면 격렬한 면역 반응을 촉발하는 가시가 빠져 있다. 타자성 역시 날카로움을 잃고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한다. 낯선 것은 이국적인 것으로 변질되며, 여행하는 관광객의 향유 대상이 된다.
 _한병철 「피로사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이전에는 죽여서 노예로 만들거나 천국으로 보내줬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고객이 되어버렸다. 유발 하라리는 이를 관용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철학자와 사상가와 예언자는 수천 년에 걸쳐 돈을 흉보면서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매도했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한편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_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타인을 노예로 만드는 것보다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 이익이다. 그래서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내가 이해한 자본주의다. (아님 말고)



정치


사람들은 다 자본주의의 노예니까, 그래도 큰 비극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심했었다. (자본주의는 전쟁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사람을 괴롭힌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일이 벌어졌다. 정치적 논리가 경제적 논리를 압도한 것이다.



바로 일본의, 아베의 경제 보복이다. 자국(일본)의 기업이 한국에 수출하는 것을 막는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바보 같은 짓이다. 무조건 손해다. 글로벌 소싱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일본 기업이 빠지면, 단기적으로는 외국(한국)에 피해를 줄 수 있지만, 결국 일본이 빠진 형태로 새로운 분업체계가 구성될 것이다. 일본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정치적 목적이 우선이기 때문에 손해보는 짓도 감수한다. 외국과의 대치상황으로 정국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건 전세계 극우세력의 공통된 필살기다. 선거 때만 되면 북풍이 부는 대한민국 정치판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극우세력은 쿠릴 열도, 센카쿠 열도, 독도 등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싶어한다.


 *북풍 :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면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극우세력의 지지도는 시원하게 올라간다.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아무것도 안 하면 끌려가게 된다) 우리나라도 지소미아*를 파기하기로 했다.


 *지소미아 : 공식적으로는 일본과 정보를 공유하자는 협정이다. 실제로는 미국의 이익에 의해 체결되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이다.


정치적 논리가 앞설 때 비극이 벌어진다. 잠이 안 온다. (아 졸려) 지소미아는 가고, 인섬니아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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