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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04. 2019

인용은 강준만처럼 하지 마라

_강준만 「글쓰기가 뭐라고」

나는 강준만 빠다. 과거 인물과사상사에서 매달 책이 나왔을 때부터 좋아했다. 지금도 집에 강준만 책만 10권 이상 있다.


강준만의 글은 데이터의 측면에서 어마어마하다. 이번 책만 하더라도 총 200페이지의 글에 참고문헌이 140개 정도 된다. 주석을 단 게 140개 정도라는 거고 주석 없이 간단히 인용하는 경우는 더 많기 때문에 사실상 페이지마다 인용이 있는 셈이다.



강준만은 일단 관련 책을 왕창 사서 다 읽고 나서야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스타일이다. 논문에서 선행연구를 먼저 분석하고 나서 한발 나아가는 것과 같다. 스스로도 자신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


나의 '메시지 중독증'은 과유불급의 차원에서 문제였을 뿐,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데엔 누구나 다 동의할 것이다. 내가 이전에 썼던 글쓰기 책들의 차별성은 '메시지' 중심이라는 데에 있었다. 글쓰기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스타일 중심의 글쓰기와 메시지 중심의 글쓰기. 내 글은 스타일에 약하고 '메시지 실용주의'에 경도되어 있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글쓰기 책이 정말 많다. 범람이다. 나는 글쓰기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형식이나 스타일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를 채우고 사상을 정리하고 나면 삐져나오는 실밥 같은 게 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무 내용 없이 위로만 있고 형식만 있는 글은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읽었다. 강준만이 글의 감성이나 문체를 이야기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도 언론이라고 생각해서 금기와 성역에 맞서는 글을 쓰려고, 메시지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글쓰기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니, 한 번 듣고 싶었다.


읽어보니, 과연 강준만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이러저러한 담론들을 다 가져와서, 이거는 맞고 이거는 틀리고 이거는 오버고 이거는 중요하다, 길을 잡아주고 있었다.


재미있던 몇 가지를 소개한다.


구어


많은 글쓰기 책이 구어체를 쓰지 말라고 하지만, 강준만은 동의하지 않는다. 문어와 구어를 적절히 섞어서 쓰는 게 좋다고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구어체는 관리의 대상이지 폐기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역설해왔다. 구어체 글쓰기를 지지하면서도,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학생으로선, 그리고 논증형 글쓰기에선, 가급적 구어체는 자제하는 게 좋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학생들이 '엄청'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 건 아무래도 구어의 영향인 것 같다. 예컨대, 어느 학생은 "지금까지 인류가 창조해낸 문화는 엄청날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런 표현은 엄청나게 바람직하지 않다. 좀더 구체적으로 정교하게 표현하는 게 바람직하다.


쉽게


전문가는 쉽게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쉽게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은 스티븐 호킹이 「시간의 역사」의 머리말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로도 증명된다. 그는 담당 편집자와 사소한 다툼을 자주 벌였다고 토로했다. 더는 쉽게 쓸 수 없을 정도로 난이도를 낮추었는데도 편집자가 좀 더 쉽게 써달라고 요구한 탓이었다. "선생님께서 단어 하나 고칠 때마다 전 세계의 독자 백만 명이 늘어난다고 생각하십시오." 호킹은 결국 그 편집자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그것에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읽기


아무래도 많이 읽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쓰려면 일단은 많이 읽어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다독을 권하는데, 그 주요 이유는 '독서의 마태효과'다. 마태효과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는 「신약성서」「마태복음」 25장 29절에서 연유한 것으로, '부인부빈익빈'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독서는 습관이기 때문에 이 효과가 잘 들어맞는다. 경험자는 전적으로 공감하겠지만, 책을 많이 읽을 수록 점점 더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책을 읽지 않을수록 점점 책을 읽을 수 없게 된다.


시작


걱정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도 버리고, 뻔뻔하게 일단 한 번 써보라고 한다.


스티븐 기즈의 「습관의 재발견: 기적 같은 변화를 불러오는 작은 습관의 힘」을 읽다가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렇게까지 독자를 배려하다니!"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는 이런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하루 30분 운동이 쉽지 않으니, 팔굽혀펴기 운동이라면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하라"는 조언이었다. 그는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비웃었다가 실제로 딱 한 번 해보고 나서, 이후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인용


인용은 양념이라고 한다. 자신처럼 많이 하지 말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여전히 그는 인용을 중시한다.


당신이 음모론에 관한 글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음모론은 사라질 수 없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자 한다면 음모론을 '종교의 세속화'로 진단한 칼 포퍼를 인용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간단한 압축미를 자랑하지 않는가.


글쓰기 책은 이게 처음이다. 다른 글쓰기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만일 다른 책을 이미 읽어본 적이 있다면 더 재미있을 책이다. 글쓰기에 대한 통념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재차 강조하기도 한다.


★★★★ 인용은 강준만처럼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강준만의 너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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