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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09. 2019

나는 포기한다

그래도 남겨진 것들이 있기에

나에게 책은 지식을 얻기 위한 도구다. 궁금한 걸 해결해주고, 아는 척 할 수 있게 해준다. 감명을 받거나,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는, 거창한 무언가는 없다. 그래서 문학보다는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읽는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가끔 생각지 못하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최근 고민이 많았다. 포기의 순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3년간 독서모임을 운영해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여행도 가고 운동도 하고 연애도 하고, 무엇보다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그리고 지쳤다. 이제 생각이 든다. 접고 떠나야겠다고.


한동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포기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을 때, 떠오른 것은 2가지 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토마시는 자신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들을 하나둘 버린다. 장래가 유망했던 자리를 버리고, 살던 지역을 버리고, 직업도 버리고, 초라하고 나이 든 자신과 마주한다. 연인 테레자는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만, 토마시는 단언한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당신의 임무는 수술하는 거야!"
"임무라니, 테레자,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_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요한 것들이지만. 괜찮다, 홀가분하다.


「곤란한 결혼」


우치다 타츠루는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혼을 하게 되면 중요한 것, 정말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 하는 것들을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다 남은 것은 균형잡기라고 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허우적 거리는, 나도 모르게 하는 행위, 그런 것들만.


정체성이란 일종의 '균형 잡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실체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넘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무심코 "아차차"하며 균형을 잡으려 하잖아요? 그 순간의 "아차차"라는 목소리나 표정, 손발의 움직임에는 자연발생적인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느낌입니다.
 _우치다 타츠루 「곤란한 결혼」


나를 둘러싼 상황은 계속 변한다. 그에 따라 나도 변한다. 아마 내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계속 변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계속 허우적 거리면 된다.


위 두 가지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나는 마음을 굳혔다. 그래, 다 포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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