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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14. 2019

추석

추석이다.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겐 불편한 시간이기도 하다. 다들 잘 살고 있구나. 사는 게 쉽지 않은데. 대견하기도 하지만, 내가 평소 질려하던 가족들의 면면을 다시 마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테이블. 계획도 없이 부치고 산더미 같이 남은 음식들. 우리 가족의 모습은, 내 모습이기도 했다. 내가 답답해하는 면면들은 사실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답을 알 수 없는 오랜 물음을 던진 끝에 어느날, 내가 그토록 달아나고 싶고 회의하던 것들로부터 나와 내 삶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인 순간, 나의 모든 아쉬움들은 그제야 비로소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로 잘나지 않은 내 가족과 친구들, 무엇보다 늘 부끄럽게 여기던 내 자신까지, 바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내게 건넨 힘과 그들과 함께 했던 세월 덕택이었습니다.
 _이석원 「보통의 존재」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집안은 어지럽고, 나는 설거지를 한다. 가스레인지, 화장실, 거실 바닥을 닦는다. 정리하고 수습하는 습관도 물려받은 것일 거다. 그러면 아마 가족들과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포용할 줄 아는 담대함도 함께 물려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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