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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Oct 10. 2019

돈 내고 새치기 하기

 _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나는 경제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시장을 좋아한다. 경쟁을 바람직하게 느끼고 독과점을 깨부수어야 할 사회악으로 인식한다. 이 책을 읽고 약간 설득당했다. 인센티브를 주는 순간, 효율적인 선택이 되는 순간, 변하는 게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책이다. 두꺼운데 비해 사례가 많아서 읽기 쉬웠다. 단순히 자신의 이론만 설파한다기 보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다. 물론 저자의 생각은 확고하고, 책을 읽으면 분명하게 느껴진다.


시장


시장의 영역이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거래하지 않았던 것들도 하나둘 거래되기 시작한다. 이에 대해 시장주의자의 의견은 간단하다. 거래가 이루어지면 서로에게 이익이다. 도덕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도 이유도 없다. 저자는 문제제기한다. 어떠한 재화가 상품화된다면, 즉 가격이 매겨지고 거래된다면, 그건 변질된다.


또한 시장논리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공공생활에서 도덕적 논쟁을 결여시킨다. 시장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선택에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은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다른 것보다 기준이 높은지, 혹은 더 가치가 있는지 따지지 않는다. 누군가 섹스를 하거나 간을 이식받는 대가로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여기에 동의한 성인이 기꺼이 팔고자 한다면, 경제학자가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은 "얼마죠?일 뿐이다. 시장은 고개를 가로젓지 않을 것이다. 시장은 훌륭한 선택과 저급한 선택을 구별하지 않는다. 거래하는 쌍방은 교환 대상에 어떤 가치를 둘지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


암표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는 여름마다 셰익스피어 공연을 무료로 연다. 입장권을 받으려면 길게 줄을 서서 받아야 한다. 당연히 대신 줄을 서서 입장권을 받아서 주는 서비스가 생긴다. 암표다. 경제학자는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서는 현상은 낭비이면서 비효율적 행동이고, 가격체계가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들은 공항, 놀이공원, 또는 고속도로에서 좀 더 빠른 서비스를 받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에 가격을 매김으로써 경제적 효용을 높이는 것이라 믿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유료 공연의 경우, 암표가 생기는 것은 가격책정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기꺼이 낼 정도의 가격으로 정해지면 암표는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경제학자는 자유시장이 재화를 효율적으로 분배한다고 말한다. 각자의 취향을 바탕으로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한다. 콘서트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큰 가격을 제시하고 어떻게든 암표를 구매할 것이며, 가장 큰 만족을 얻을 것이다. 콘서트를 조금만 좋아하는 사람은 합리적인 가격의 콘서트만 참여할 것이며, 그정도의 행복만 얻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경제학자는 지불할 의사를 가지고 얼마나 높은 가치를 매기는지 판단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능력


어떤 재화에 기꺼이 가격을 지불하려는 것이 꼭 해당 재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 가격에는 자발적으로 지불하려는 마음만큼이나 지불할 수 있는 능력도 반영된다. 셰익스피어 연극이나 레드삭스 경기를 가장 간절하게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도 입장권을 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최고 가격을 내고 입장권을 손에 넣은 사람이라도 그 경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야구장에 늦게 도착해 비싼 관람석에 앉았다가 일찍 자리를 뜨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그럴 때면 그들이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의심스럽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가격으로는 누가 가장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지를 가려낼 수 없다. 그렇다면 줄서기를 통해서 얻는 것은 정당하고, 암표를 통해서 사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까. 이 또한 간단하지 않다. 암표가 돈이 없는 사람을 차별하듯이, 길게 줄서기는 시간 없는 사람을 차별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자발적으로 돈을 지불하려는 마음과 능력을 바탕으로 재화를 분배하듯, 줄서기는 자발적으로 기다리려는 마음과 능력을 바탕으로 재화를 분배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가격을 지불하려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려는 마음보다 더 나은 가치 평가 기준이라고 추정할 근거는 없다.


시장과 줄서기


시장과 줄서기는 재화를 분배하는 방식이다. 꼭 어느 게 낫다고 할 수 없고, 장단점이 있다. 위 사례는 시에서 진행하는 무료공연이지만, 유료 콘서트라면, 가격을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할 정도로 높이는 게 좋을까. 상업적인 콘서트도 팬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측면이 있다. 팬들을 계급으로 나눠서, 여유있는 팬들은 손쉽게 표를 구매하고, 가난한 팬들은 기다리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면 설사 암표가 생기더라도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이지 않는 게 이해가 된다. 결국 사례별로 고민을 해야 한다.


공연뿐 아니라, 기여입학, 광고, 혈액 판매, 생명보험 거래, 벌금 등 여러가지 사례를 다룬다. 한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우리는 시장에 살고 있고, 아무 준비 없이 있다보면, 어느새 전부 상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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