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적인 한국 남자라면 다 알 테지만, 어쨌든 입영통지서를 받게 되면 삶은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도서관 건물을 지었다면 그 다음에는 책을 채워 넣어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입영통지서의 가장 큰 기능은 거기에 있으니까. 예컨대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종이쪼가리에 돌아오는 12월쯤 입대하는 것으로 돼 있다면 그때까지는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다. 뭐, 총검술이라도 미리 연습한다면 좋은 계획이 될 듯도 하지만, 그런 인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는 걸 지켜보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는 실연하면서 이미 알게 됐지만, 그게 또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는 입영통지서를 받아보고야 알게 됐다. 새 양말 한 짝 살 수 없는 처지라니! _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저자의 말대로 입대전은 붕 떠있는 시기다. 나는 맛있는 걸 많이 먹었다. 입대 후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는지 물었을 때, 지인들이 입대전에 먹으려다 못 먹은 게 한이 된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먹고 쉬고 요가하며 지냈다.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런데 입대하고 보니 가장 맛있는 건 군대에 있었다.
6주간 훈련을 받는데,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몸을 움직여야 하고, 간식 같은 건 없다. 배가 고프다. 이렇게 배가 고팠던 적이 있었을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배가 고프다. 그래서 밥이 맛있다. 밥과 반찬과 제육 같은 걸 다 섞고 비벼 먹는다. 급식이 이렇게 맛있던 적이 있었을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맛있다.
그러니까 입영통지서를 받으면, 굳이 맛있는 걸 찾아 먹을 필요는 없는 거였다. 차라리 총검술을 미리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