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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Nov 14. 2019

문명이 한순간에 와르르

 _최태성 「역사의 쓸모」

좋게 말하면 재미있게 역사를 설명하는 아저씨다. 하지만 중구난방이다. 하나의 역사관을 가지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게 아니라, 언제는 A를 이야기하고 다른 장면에서는 B를 이야기한다. 다채로운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그 입장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쇠뇌


신라 문무왕 때 이야기를 한다. 쇠뇌라는 (큰 화살을 멀리 쏠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 장인이 신라에 있었는데, 당나라에서 이 사람을 데려갔다. 그래서 쇠뇌를 만들게 해서 신라를 공격하려고 하는데, 이 장인이 끝까지 쇠뇌 만드는 걸 거부했다는 이야기다.


구진천은 알고 있었던 거예요. 자신이 쇠뇌를 만드는 순간 그것이 신라 사람들을 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구진천의 선택이 수많은 사람을 살린 셈입니다.


저자는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활용해서, 한국 기업에서 중국 기업으로 이직하는 핵심인력들을 비난한다. 높은 연봉을 받고 기술을 빼간다는 취지였다. 읽으며 너무너무 화가 났다. 그에 따르면 중국 기업으로 이직한 사람은 한국인에게 화살을 쏘는 게 되어버린다.


얼핏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민족주의적인 태도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나누고 우리 것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취지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 언론과 대기업의 입장, 강자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다. 피부와 와닿는 노동 환경이나 조직 문화, 연봉과 대우를 이야기하지 않고, 상상의 공동체인 국가와 민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연봉을 낮추기 위해서.


법을 어기는 조건이라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선은 우리나라가 최고 기술자들에게 대우를 잘 해주어야 합니다. 다만 좋은 대우가 선행됐다면 한번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나의 선택이 주변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대우를 은근슬쩍 언급하고 넘어갈 이야기가 아니다. 이게 핵심이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배신이라는 억지주장에 넘어가버리면 연봉이 낮아진다. 전형적인 지배자의 논리다.


잉카


무너진 잉카제국을 이야기한다. 겨우 수백 명의 스페인 군인들에 의해, 멕시코의 아즈텍제국이 멸망하고 이어서 페루의 잉카제국이 멸망한다. 어떻게 소수의 유럽인들이 수백만 명이 넘는 문명을 멸망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그리고 저자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안일함이다.


아타우알파는 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어요. 모를 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해 알아볼 생각도 전혀 없었죠. ... 아타우알파는 관성에 따라 늘 하던 대로 사고하고 늘 하던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 안일함에 오랜 시간 쌓아온 문명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 것은 아닐까요?


저자에 대한 신뢰도 와르르 무너진다. 총균쇠도 아닌 안일함 때문이라니. 그동안 저자가 보였던 태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도자의 선택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이고, 역사학자는 아무래도 영웅들에 초점을 맞춰서 보는 경향은 있을 것 같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라는 책에서, 문명의 차이를 만든 것은 지리적, 환경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다이아몬드의 주장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겠지만, 최태성의 논리보다는 설득력이 있다.


쉽게 써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술술 읽힌다. 책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아래에 적었다.



★★★★★ 역사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고 엉망진창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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