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이명호 「노동 4.0」
증기 기관이 등장하면서 산업사회가 시작됐다. 산업 사회는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엔진이라는 범용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들은 짧은 시간에 보다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대량 생산을 촉진하면서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다.
엔진의 등장이 인간의 근력이라는 물리적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서였듯, 컴퓨터의 등장은 인간의 지력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인간의 지능과 같거나 이를 뛰어넘는 기술이 등장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예측이며, 이제 본격적인 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산업사회의 거의 모든 제품들은 소비자 개인의 효용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제품은 그것을 사용하는 개인들의 상호 관계 속에서 효용이 증가한다. 플랫폼을 사용하면 할수록 그 플랫폼의 효용이 증가하는 식이다. 우버, 에어비엔비 같은 공유 서비스와 플랫폼은 디지털의 특성상 언젠가 등장할 서비스였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하에 가상 물리 시스템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생산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 개발,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 산업적 가치 창출에 우선순위를 둔다. 반면 미국은 디지털 플랫폼이 서비스 산업에서 큰 역할을 차지한다. 독일식 접근은 기존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변화시키는 점진적 특징을, 미국식 접근은 현존 회사나 사업 모델을 강제적으로 전복시키는 파괴적 특징을 지닌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소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이베이와 같은 디지털 상거래 플랫폼, 우버와 에어비엔비 같은 중개 플랫폼을 거쳐 IT를 기반으로 개별 노동자들을 연결시켜 주는 중개 플랫폼인 크라우드 워킹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다. 노동의 욕구가 강한 개별 노동자들이 연결되는 크라우드 워킹 플랫폼이 증가하면 디지털 시대의 형태에 맞는 1인 자영업자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아웃소싱한 업무를 수행하는 개념인 크라우드 워크는 노동자가 높은 수준의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고용 및 소득의 불확실성을 감내해야 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 반복적인 노동의 부담을 감소시켜 노동자가 새로운 능력을 개발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화에 따른 작업 과정의 획일화, 최적화로 인해 노동자가 역량이나 경험을 축적하기보다 지시에만 따르는 단순 노동을 반복해 오히려 노동 능력을 상실하는 현상도 우려된다.
먼저 많은 업무 공정에서 자동화가 이뤄진 고도의 기술 중심 시나리오가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자동화로 인한 노동 상실 현상이 폭넓게 발생하고, 노동 시장은 고도로 숙련된 기획자 집단과 이들의 결정에 의해 단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 집단으로 양분된다.
광대역 인터넷, 네트워크 기술, 모바일 단말기 등 디지털 기술로 노동자는 언제 어디서나 작업 도구에 접속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개인의 상황에 맞게 근무 시간과 일정을 조정하기를 원한다. 디지털화로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재택근무와 원격 근무라는 형태로 노동 시간과 공간의 유연성을 일정 부분 확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상시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 노동의 탈경계화 현상을 일으켰다. 업무와 개인 생활, 일과 여가, 직장과 집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노동자의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문제가 있다.
전문직이 자리를 틀어쥐고 앉아 있으니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혁신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전문가들이 지대를 추구하면서 사회가 역동성을 잃고 국가가 쇠락하고 있다.
전문직의 유연성 부족은 심각한 문제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의사, 법률가, 회계사 등 경험과 축적된 지식이 곧 경쟁력인 직업들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데, 한국에서 이들 직업군의 유연성은 그리 높지 않다. 앞으로 이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의 진행을 막는 저항 세력이 될 수도 있다. 혁신의 주체가 되어야 할 전문가 집단이 기득권의 외곽 세력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