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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08. 2019

읭? 내 차가 아니네?

 _김민섭 「대리사회」

무슨 사회라고 이름이 붙으면 왠지 거창한 것 같다. 이 책도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가볍고 읽기 쉬운 형태였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겪은 일들, 깨달음들을 적어놓은 르포르타주*다. 쉽게 읽히고 재미있지만, 무거운 이야기, 사회적인 이야기도 담겨있다. 형식은 쉽고 가벼운데, 내용에는 의미가 녹아 있으니, 저자도 보통은 아니다.


저자 김민섭은 시간강사였다. (대학과 달리) 4대 보험을 보장해주는 맥도널드에서 일하며 강의를 했고, 이제는 강사를 때려치우고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나도 운전하는 게 일이지만, 법인차량을 타기 때문에, 자차는 없다. 그리고 술도 주로 혼자 집에서 마시기 때문에 대리를 부를 일이 없다. 그래서 대리운전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지 몰랐다.


대리운전을 통해, 저자는 3가지의 통제를 경험한다고 한다. 일단 행위를 통제당한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제외하면, 의자의 기울기나, 거울의 각도, 에어컨, 창문 등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불편해도 몸을 차에 맞춰야 한다. 음악의 볼륨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으로 말을 통제당한다. 주인이 가끔 먼저 말을 걸 때만 간단하게 대답하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로, '네, 맞습니다.'라는 문장만 사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사유를 통제당한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불편한 상황에 몸을 맞추는 게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적응이 되어서 편해졌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운전만 하는데 익숙해진 것이다. 판단도 질문도 유보하게 된다.


타인의 운전석은 이처럼 한 개인의 주체성을 완벽하게 검열하고 통제한다. 신체뿐 아니라 언어와 사유까지 빼앗는다. 그런데 운행을 마치고 운전석에서 내려와도 나의 신체는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여전히 '대리'라는 단어에 묶여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어느 공간에서도 그다지 주체적인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대학에서도 그랬다.
 _김민섭 「대리사회」


맞는 말이다. 나는 노동자고, 사장이 시키는 일을 한다. (그래서 너무 행복합니다. 대표님!!직장에서 행동과 말을 조심하고, 어느 순간, 순응하게 된다. 대리운전을 해본 적이 없지만, 나도 대리운전기사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모두가 한 사람의 대리운전 기사다. 자신이 그 차의 주인인 것처럼 도로를 질주한다. 하지만 조수석에는 이미 누군가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시동을 걸기 이전부터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욕망은 내비게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고 개인의 의지는 통제되고 검열된다. 차를 멈추고 운전석에서 잠시 내려, 그렇게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어느 균열의 지점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엑셀을 더 강하게 밟는 데만 힘을 쏟는다. 단속 카메라가 보이면 브레이크를 밟고, 경로를 이탈했다는 경고음에 다시 도로로 올라오면서도, 자신이 주체라는 환상에 빠져 계속 운전대를 잡는다. 그렇게 대리사회의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 된다.
 _김민섭 「대리사회」


자신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자를 가리켜, 철학자 한병철은 '주인이자 노예', '포로이자 감독관'이라고 표현했다. 맞는 말이지만, 어찌 보면 김민섭의 표현이 더 와닿는다.* 우리는, 스스로가 대리운전기사인 줄 모르는 운전자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모두가 자유롭고 빈둥거릴 수도 있는 그런 사회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주인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를 낳는다. 이러한 강제사회에서는 모두가 저마다의 노동수용소를 달고 다닌다. 그리고 그 노동수용소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에 있다.
 _한병철 「피로사회」


책에서 어려운 내용은 이 정도다. 그 외에는 대부분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차있다. 저자도 이 책은 앞으로 쓸 이야기의 서론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분명 하고 싶은 말들이 있을 텐데, 앞으로 어떠한 작품들을 써내려갈지 기대된다.




*르포르타주 : 프랑스어로 탐방기사를 뜻한다. 주로 르포라고 한다.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건을 다루는 글이다.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가 유명하다.

*와닿다 : 원래 '와닿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와 닿다.' 이렇게 띄어쓰곤 했다. 2017년 2월에 사전에 등재되었으니, 이제 붙여 써도 된다.



★★★★ 새로운 관점. 재미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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