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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09. 2019

국민변태 김갑수

 _김갑수 「작업인문학」

TV조선에 꾸준히 나오면서 보수패널들에게 다구리 당하는 꽁지머리 아저씨. 김봉규와 항상 티격티격 싸우는 콤비. 나에게 김갑수는 처음 그렇게 다가왔다. 방송이나 팟캐스트, 라디오 등에서 간혹 볼 수 있었던, 그는 통시적 관점을 가지고 고리타분한, 편견에 일갈을 가하는 사람이었다. 배우 김갑수 아니다. 음악이나 커피, 문학에 대한 지식이 상당해 보였고, 이번 책에서 마음껏 자랑했다. 문빠라는 걸 자랑스럽게 드러내놓고 여기저기서 설전을 벌이는 모습이 항상 멋있고 재미있고, 가끔은 귀엽기도 했다. 확인되지 않은 추정을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바람에 욕을 먹기도 한다. 그가 자주 열을 내면서 성토하는 주제는 다른 아닌 효. 불효를 권장하는 불효전도사다. 아 그리고 변태. 효와 변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 책에서는 효 이야기는 안해서, 변태 이야기만 간단히 적어본다.


일단 서양 이야기를 가져온다. 뭐든지 선진국에서 한다고 하면 설득력이 있다.


일단 이른바 선진국, 그러니까 잘 먹고 잘 살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워 보이는 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전통적 시작에서 볼 때 변태스러운 짓을 왜 많이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실 긴 토론이 필요없다. 그들은 사회·문화적 억압, 자기 검열, 규범과 상식을 깨부수어온 역사를 지녔다. 규범이며 윤리며 도덕이며 하는 것과 싸워온 토양이 곧 그들의 풍요를 낳은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_김갑수 「작업인문학」


맞는 말이다. 깨부수어야 한계를 넓힐 수 있다. 이어서 지식인답게 고전을 인용한다.


한스 페터 뒤르의 매우 고매한 책 「음란과 폭력」을 참조해본다. 인간이 벌이는 어떠한 행동도 비정상의 영역일 수 없으며, 성적 행동 가운데 유일하게 변태로 규정되는 것은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일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뒤르에 따르면 상상 가능한 어떠한 행위도 변태가 아닌 정상 행위라는 것이다.
 _김갑수 「작업인문학」


맞다. 사피엔스에도 나오듯이, 자연의 인간은 모든 것이 가능하며, 정상/비정상을 나누는 것은 (기독교) 문화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없다.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말로 부자연스러운 행동,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은 아예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금지할 필요가 없다. 수고롭게시리 남자에게 광합성을 금지하거나, 여자에게 빛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게 하거나, 음전하를 띈 전자가 서로에게 끌리지 못하도록 금지한 문화는 하나도 없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_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그는 변태적인 그림만 그리는 지인 김정운(그 파마머리 아저씨)을 언급하며 변태라는 단어를 숭고의 단계까지 올려놓는다.


새로운 인생길을 찾아 타국으로 떠난 김정운이 변태의 꿈을 꾸게 된 까닭은 뭘까. 그것은 자아의 확장 과정이다. 자기 욕망과 환상을 탐구 대상으로 삼아 독자적으로 변용시키는 행위다. ... 변태는 곧 창의성을 뜻한다. 창의적 태도는 우선 좀 이상해 보이는 걸 특징으로 한다.
 _김갑수 「작업인문학」


숭고한데다 실용적이기까지하다. 변태는 자아의 확장인데다 창의적이다. 그의 말을 듣자하니, 변태라는 것이 대단해보인다.


우리는 각자 타인과 구별되는 자아를 갖고 있는가? 그러기 위해 의식적으로 어떤 실천을 하는가? 자기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고는 있는가. 과연 자기에게 자기가 있는가?
 _김갑수 「작업인문학」


이 정도가 되면, 나는 왜 그동안 변태를 추구하지 않았나 자괴감이 들 정도다.


다중의 일원으로 모나지 않게, 특이하지 않게 처신하라는 것이 우리 전통의 가르침이다. 그 비겁한 상식의 생존술로 연명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온 토양이다. 그런데 고작 연명이나 하는 존재를 누가 어떻게 사랑해줄까. 자기를 사랑하는 행위는 '나'라는 독립된 세계를 '있게' 만드는 일이다. 자아의 탐구심과 욕망이 넘쳐흘러 변태의 꿈, 변태의 미학을 내놓고 그림으로 그리는 다소 극단적이라 쳐도, 최소한 억압된 자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독립운동은 꼭 필요하다. 그게 바로 자기를 있게 만드는 일, 자기를 사랑하는 태도니까.
 _김갑수 「작업인문학」


그렇다. 나를 해방시키는 독립운동이다. 변태보다 조금 더 고상한,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아들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남들에게 미움을 받아야 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짓을 해야 한다.


철학자 : 단적으로 말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 일세.
청년 : 네? 무슨 말씀이신지?
철학자 : 자네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 그것은 자네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일세.
청년 : 아, 아니. 하지만...
 _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용기」


독립운동 하러 가야지...


★★★★ 커피랑 재즈 이야기 엄청 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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