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한'이라 불렀던 게. 미디어에서 많이 접했던 것 같다. 비통한 정서를 담고 있는 문학작품이나 영화가 나오면 해설자는 꼭 이 단어를 언급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엽기적인 영화의 대표격인 「서편제」다.
전통적 정서란 무엇일까? 한국 고유의 전통적 정서를 보여준 대표적 작품으로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들 수 있다.
_강유정 「한국인 고유정서 그린 서편제」 조선일보 2009-06-04 기사
사실 「서편제」에서 다루고 있는 판소리는 '한'과 거리가 멀다. 잔치에 가깝다.
판소리 여섯 마당 어디에도 그런 식의 자학에 가까운 비극에의 침윤은 없다. 비록 비극으로 시작했어도 결말은 한바탕 대축제로 마무리된다. 가장 비극적인 작품 「심청전」도 마지막에는 오히려 심봉사뿐 아니라, 수많은 봉사들이 눈을 번쩍번쩍 뜨는 환희로 마무리되지 않는가.
_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한은 일본에서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은 일본에 의해 발견되었다. 아래의 글은 야나기 무네요시가 바라보는 조선이다.
조선 역사의 운명은 슬픈 것이다. ... 선의 아름다움은 실로 사랑에 굶주린 그들 마음의 상지이라 생각한다. ... 오랫동안 참혹하고 처참했던 조선의 역사는 그 예술에다 남모르는 쓸쓸함과 슬픔을 아로새긴 것이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비애의 아름다움이 있다. 눈물이 넘치는 쓸쓸함이 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가슴이 메이는 감정을 누를 길이 없다.
_채운 「미에 복속되는 삶, 과거에 복복되는 미래」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역사를 '오랫동안 참혹하고 처참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일본과 달리 조선은 평화로웠다. 무사태평했던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참혹했던 시기는 임진왜란, 그리고 식민지 시절뿐이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마치 오지의 원주민을 구경하듯이 조선을 바라보았고, '조선의 미'라는 것을 찾아냈다. 그 이후 조선의 미는 비애미라는 개념이 생겼다.
어떻게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라는 게, 타국에서 수입될 수도 있는 걸까. 아이러니다.
일본인에 의해 조선의 미가 발견되는 것은 참, 어처구니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것이야말로 '한'이라는 이른바 '민족 고유의 정서'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아이러니를 한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_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그보다 더 신기한 건, 식민지가 끝난 지금도 사람들은 '한'을 이야기한다. 문제제기의 대상으로조차 보지 않는다.
근대 초기에 형성된 비탄의 정서가 식민지 경험과 결합되면서, 그것이 역사 전체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자명한 진리로 전도되어버린 것이다.
_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