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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Dec 13. 2019

싸우면서 크는 거지

또 싸우니?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나야지. 자아. 악수하고 화해해. 다툼을 벌이는 아이들에게 사회는 밑도 끝도 없는 화해를 종용한다.


정치제도는 민주화 되었고, 정권 교체도 경험했지만, 일상생활까지 그 따스함이 전달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다.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은 종종 정치가 3류니 4류니 하는 말을 하지만, 사실 정치는 우리 일상보다 훨씬 더 민주화되어있다.


“한국 정치는 4류고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특파원들에게 한 말이다.
 _한국경제 「한국에서 기업하기 정말 괴롭다」 2019-07-11 기사


적어도 정치인들은 열심히 싸운다. 동물 국회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지자들이 원하는 바를 카메라 앞에서 목이 터져라 외친다. (카메라가 꺼지면 쉬기는 하지만.) 반면 사이좋게 지내도록 길러진 우리는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조차도 화해 시키려고 노력한다.


젠더 갈등이 한동안 이슈였다. 조금 잠잠해지려고 하면 어느새 새로운 이슈가 터진다. 미투, 82년생, 탈코르셋 등 중요한 이슈에서 투닥투닥 하기도 했고, 전혀 상관없는 일상 기사에서도 댓글은 활활 불타올랐다.


싸운다고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치에만 머물던 훈풍이 일상까지 내려오기 시작한 거다.


예전 같았으면 일단 댓글을 달고, 뒤늦게 뇌를 움직였을 아이들도, 이제는 '이런 댓글을 달면 매갈들이 욕을 엄청 하겠지?' 하며 망설이고 주춤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혐오와 비하로 뒤덮여 차마 보기도 어려웠을 댓글을, 이제는 용기 내서 읽어보고, 좋아요/싫어요를 누른다. 누군가 나보다 한 발 앞서, 한남충 어쩌구 하는 욕설을 질펀하게 써놓았을 게 분명하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상황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옛날 같았으면 이 시끄러운 아이들을 확 잠재워버렸을 텐데, 아쉬울 수도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투표를 마친 뒤 기자들과 가진 짧은 간담회에서 “카메라 기자들 보면 내 사진은 꼭 삐뚤어지게 찍는다. 인상 나쁘게.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대해서는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봐”라고 말한 뒤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라고 덧붙였다.
 _한겨레 「전두환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발언 다시 화재」 2012-12-06 기사


하지만 그동안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이 시끌시끌한 상황이 더 좋다. 정겨운 전통시장 같다. 내 편이 되어줄 목소리 큰 아주머니가 있는 것 같아, 든든하다. 전통시장은 교통이 불편하다.


대립을 일으키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할 거라고 짐작할 수도 있는데,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닙니다. 파괴적인 태도를 강요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호감을 받으면 당신의 자원을 빼앗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늑대가 양을 좋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양에게는 늑대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_야스토미 아유무 「단단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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