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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Dec 10. 2019

가벼움의 미학

 _피천득 「인연」

앞부분이 재미없었다. 표지도 워낙 별로였다. 빨리 읽고 버리려고 마음먹고 시작했으나, 읽다 보니 귀여웠다. 후줄근한 표지도 벗겨버리니 세련된 양장본이 되었다.



책에서 피천득은 때로 아사꼬를 그리워 하는 청년이었다가,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였다가, 딸을 돌보는 꼰대가 된다.


글은 매우 간결하다. 「용돈」이라는 글을 보면, 짧은 문장으로 넋두리를 이어간다. 화자가 받는 게 월급인지 용돈이지 헷갈릴 정도로 아이처럼 이어간다.


우리집에는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같은 것이 없다. 그런 것을 사기에는 내 월급이 너무 적다. 월부로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월부로 물건을 사면 그만큼 월급이 줄어드는 셈이 된다. 나는 월급이 줄어드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월급이 줄어들면 내 용돈도 줄어들 것이다.


잠든 딸을 바라보 든 생각을 적기도 한다.


아침 여섯시 반이 되어도 깨지를 않았다. 산에 안겨서 잠든 호수와 같이 서영이 숨결에는 아무 불안이 없다. 더 재우고 싶었으나 오 분 후에 그 단잠을 깨웠다. 세수하는 동안에 시간표에 맞추어 책을 가방에 넣어주었다.


나름 유머를 발휘하기도 한다. 코에드는 여학생을 의미한다.


30년 전 내가 상해에서 공부하던 시절 내 주위에는 서영이 같이 소녀라기는 좀 지났고 젊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른 코에드들이 있었다. 춤 잘 추는 M은 춤뿐이 아니라 그의 아름다운 다리로 이름이 높았다. 모두들 그를 백만불 다리라고 불렀었다. 두 다리가 백만불이었는지 한 다리에 백만불이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는 지금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데, 남편은 말레이지아에서 제일 큰 고무 플랜테이션의 소유자라고 한다. 그녀는 학생 때 어떤 가난한 화가를 죽도록 사랑하다가 죽지는 않은 일이 있다.


사소한 소재를 가지고 가볍게 끄적인다. 좋아하는 인물이나 스쳐지나간 인연들을 다 기록했다. 일기장을 펼쳐보는 기분이 든다. 가르침이나 교훈 같은 건 없다. 가벼움의 미학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다른 출판사 버전도 있다. 내가 본 건 샘터였는데, 이게 저렴하다.


★★★★★ 귀여운 천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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