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양파 「여혐민국」
영국에 와서는 쭉 면접을 보러 다녔다. 서른 살 여자였지만 그 어떤 면접관도 나에게 '결혼했냐, 애 낳을 거냐, 애 낳으면 직장 어떻게 다닐 거냐, 친정어머니가 애 봐줄 수 있냐' 따위는 묻지 않았다. 영국에서 취업 1년 후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으나 잘리지 않았으며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덕분에 경력을 계속 쌓을 수 있었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게임회사 EA,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직할 수 있었다. 이 역시, 유부녀가 직업을 갖지 못하거나 직업이 있더라도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해고되어야 했던 지난 시절 여성에게 가정과 직장은 양립할 수 없다고 믿던 시대부터 사워준 이들 덕분에 가능한 결과다.
내가 독해서 버틴 게 아니고
내가 잘나서 회사가 알아서 대우해준 게 아니고
내가 운 좋게 훌륭한 상사를 만나서 그런 게 아니고
그저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바뀌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었다. 성평등, 고용평등 그리고 노동자 권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 싸워주었던 사람들 덕분이다.
"이해하시죠? 남자분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성추행 위험도 있고, 같이 회식하기도 좀 그렇잖아요. 남자분들 술 마시면 실수 많이 하시니까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네, 뭐 그러시겠죠. 근데 통계 보면 아시겠지만, 성추행 가해자의 90퍼센트는 남자예요. 성폭행 가해자도 95퍼센트가 남자죠. 사내 성희롱도 말할 것 없고요. 강력범죄 가해자도 거의 다 남자인 거 아시죠? 회사 입장에서 남자분을 들이면, 아무래도 기존 사원 분들이 불편한 점도 많아지고요..."
"아 정말!"
수십 수백 번 들어온 말을 또 읊어대는 걸 듣자니 혈압이 확 올라서 실수해버렸다. 직원의 눈이 당장에 싸늘해진다.
"지금 화내신 건가요? 호르몬 조사는 받으셨어요?"
그렇다. 남자들은 감정적이고 위험하다는 편견이 있다. 그래서 목소리만 조금 높여도 당장 '분노 조절 못해서 감정적이고 위험한 남자'로 찍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