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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Dec 09. 2019

그의 성공은 그의 것이 아니다

 _양파 「여혐민국」

아주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다. 그것도 영국에서. 두 아이도 기르고 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 통쾌한 글을 쏟아낸다. 대부분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다.



공감가는 이야기, 부러운 커리어, 이런 것들이 아마 책의 성공요인일 수 있겠지만,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연대


저자는 본인의 성공기를 자기계발서로 만들지 않는다. 어설픈 겸손을 꾸며내는 사람들과 다르다. 나는 환경결정론자여서, 항상 사회나 구조 이야기를 하는데, 저자도 비슷한 입장이어서 더 받아들이기 쉬웠다.

그는 성공했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낸 성공이 아니다. 고졸인데 취업하고 일 하는데 아무런 문제 없던, 일하면서 칼퇴하고 학사, 석사를 공부할 수 있던 노동환경, 가사와 육아를 아내 몫으로 착각하지 않는 남편, 아이 낳은 여성을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경력단절 시키지 않는 노동법 등.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성공으로 본다. 그의 성공을 도와준 환경과 선배에게 감사하고, 한국도 그렇게 만들어가자고 제안한다.


영국에 와서는 쭉 면접을 보러 다녔다. 서른 살 여자였지만 그 어떤 면접관도 나에게 '결혼했냐, 애 낳을 거냐, 애 낳으면 직장 어떻게 다닐 거냐, 친정어머니가 애 봐줄 수 있냐' 따위는 묻지 않았다. 영국에서 취업 1년 후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으나 잘리지 않았으며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덕분에 경력을 계속 쌓을 수 있었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게임회사 EA,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직할 수 있었다. 이 역시, 유부녀가 직업을 갖지 못하거나 직업이 있더라도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해고되어야 했던 지난 시절 여성에게 가정과 직장은 양립할 수 없다고 믿던 시대부터 사워준 이들 덕분에 가능한 결과다.
내가 독해서 버틴 게 아니고
내가 잘나서 회사가 알아서 대우해준 게 아니고
내가 운 좋게 훌륭한 상사를 만나서 그런 게 아니고
그저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바뀌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었다. 성평등, 고용평등 그리고 노동자 권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 싸워주었던 사람들 덕분이다.


비유


비유 장인이다. 말도 안되는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페미스트의 주장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가정인데, 아주 재미있고, 공감이 간다.


백인 사회에서 묻지마 살인 사건에 희생된 한국 남성을 등장시킨다. 물론 가상이다. 가상의 상황에서 동양 남성에 대해 쏟아내는 비난들이 뭔가 화가 나면서도 익숙한 논리다.


여성 상위 시대도 나온다. 남성 취업하기가 너무 힘들다. 물론 가상이다.


"이해하시죠? 남자분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성추행 위험도 있고, 같이 회식하기도 좀 그렇잖아요. 남자분들 술 마시면 실수 많이 하시니까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네, 뭐 그러시겠죠. 근데 통계 보면 아시겠지만, 성추행 가해자의 90퍼센트는 남자예요. 성폭행 가해자도 95퍼센트가 남자죠. 사내 성희롱도 말할 것 없고요. 강력범죄 가해자도 거의 다 남자인 거 아시죠? 회사 입장에서 남자분을 들이면, 아무래도 기존 사원 분들이 불편한 점도 많아지고요..."
"아 정말!"

수십 수백 번 들어온 말을 또 읊어대는 걸 듣자니 혈압이 확 올라서 실수해버렸다. 직원의 눈이 당장에 싸늘해진다.

"지금 화내신 건가요? 호르몬 조사는 받으셨어요?"

그렇다. 남자들은 감정적이고 위험하다는 편견이 있다. 그래서 목소리만 조금 높여도 당장 '분노 조절 못해서 감정적이고 위험한 남자'로 찍힌다.


이해가 확 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설명해야  남성으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순간이 많았다. 아마 많은 여성분들이 처하기 쉬운 상황일 거다. 그래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그걸 저자는 아주 잘 해내고 있다.


단, 지루한 부분도 많다. 아무래도 페미니즘 에세이다 보니, 복사붙여넣기 한 것 같은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뻔한 부분은 슥슥 넘겼다.


★★★★★ 비유장인. 겸손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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