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스타벅스다. 익숙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여타 커피전문점과 달리 층고도 높고, 탁 트인 투명창에, 갑갑하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좋다.
줄 서는 게 귀찮아서 어플로 주문한다. 오늘도 언제나 처럼 따뜻한 그린티라떼를 골랐다. 우유는 두유로 바꾸고, 우유거품은 많이 하고, 녹차가루를 조금 더 넣고, 거기에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한다. 항상 이 메뉴를 시키기 때문에, 조금만 더 뻔뻔했다면 눈을 찡긋하면서 '나는 항상 마시던 걸로!' 외쳤을지 모르지만, 소심해서 못한다. (했다면 그야말로 갑질...) 스타벅스 어플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주문은 하지 못했을 거다. 과연 언택트*가 편하다.
주문하고 나서,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는데, 그때 즈음 나는 두근두근 한다. 항상 같은 걸 시키면서 뭘 긴장하느냐 물을 수 있겠지만, 이름 때문이다. 내 이름이 조금 길다. 이태원댄싱머신이다. 이씨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나 힙한 걸 좋아하는 부모님이 지어주셨다. 영혼을 담아 로봇 춤을 추더라도 자신만의 춤을 추라는 의미에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아니다.)
스타벅스 어플에서도 본명을 그대로 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한 글자가 모자랐다. 스타벅스 어플에는 닉네임 글자 수 제한이 있다. (신세계 실망...) 그래서 등록한 스타벅스 닉네임은 '이태원댄싱머'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면, '이태원댄싱머님~ 음료 나왔습니다~'하고 불러준다. 뭔가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 어느날 창의적인 직원 분을 만났다. (취업난으로 인해 높아진 직원 역량이다.) 말도 안했는데, 숨어있는 한 글자를 찾아내서 '이태원댄싱머신님~ 음료 나왔습니다~' 하고 불러준 것이다. 각기춤을 추며 커피를 받아갔다. 그게 섬세한 직원 분의 마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제 기대하게 된다. 과연 오늘은 내 이름을 완전하게 불러줄까.
어플의 한계, 데이터의 한계를 사람이 발견하고, 재치와 순발력으로 보완한 장면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눈 앞이다. AI가 모든 서비스를 대체한다 하더라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여기서 봤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그렇다.)
내 빈틈을 발견하고 말 없이 채워주는 글루건 같은 사람, 스타벅스에 있다.
* 언택트 : contact(접촉)에 부정어인 un 을 붙였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 어플이나 기계를 이용해서 쇼핑하는 것을 말한다. 점원이 달려들어서 말 걸지 않는 화장품이나 옷 가게, 무인모텔, 음식점의 키오스크 그리고 어플을 이용한 주문까지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