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치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Dec 23. 2019

능력이란 무엇인가

 오늘 흥미로운 기사가 두 개 나왔다. 정반대로 보여서 재미있는 기사였다.


그러나 "20년 넘게 사원 직급에만 머무르게 하고 있다"는 A씨의 주장처럼, 승진 과정에서의 B사의 성별 불균형은 통계적으로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_KBS 「20년 넘게 일해도 사원…‘고졸 여성’이라 그렇다고요?」 2019-12-23 기사


한 용기 있는 분의 진정(요청)으로 나온 기사였다. 회사의 임원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건 말 안해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학력에 따라 그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게 놀라웠다. 하위직에는 고졸 출신 여성이 많았지만, 고위직에는 고졸 출신 여성이 적었다. 당연한가? 나는 이 정도인지 몰랐다. 2600명이 넘는 부장, 차장 중에서 고졸 출신 남성이 516명인 반면, 고졸 출신 여성은 4명이었다.


댓글은 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다. 아주 순화해서 말하자면, 여성이라서 승진 못하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거다, 이 여성아~ 정도 되겠다. 능력을 이렇게 다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니, 다들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보나보다.


나흘간 이어진 시합에서 종료 10분을 남겨 놓고 한국 국가대표 최은영 씨(21·에몬스가구)의 오른손에 피가 흘렀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끌에 찔린 것이다. 규정상 상처 치료를 위해 작업을 바로 멈춰야 했다. 하지만 1초가 아까운 상황인 그는 재빨리 장갑으로 상처를 가렸다. 최 씨는 장갑이 피에 젖어가는 가운데 막판 스퍼트를 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시합 과제물인 장식장에 피가 묻지 않게 마지막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_머니투데이 「장갑 피로 젖는데…끝까지 공구 놓지 않은 태극전사」 2019-12-23 기사


이번에는 최초로 여성 국가대표가 출전한 기능올림픽 이야기다. 손가락에 상처가 나 피를 흘려가며 투혼을 발휘했고, 우수상을 받았다.


이번에도 댓글은 상상 가능했다. 아주 순화해서 말하자면, 이 사람처럼 능력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 시끄럽게 이야기 하지마, 이 여성아~ 정도 되겠다. 마치 20년 고졸 사원 기사를 다 같이 읽고 이 기사로 넘어와서 댓글을 단  았다.


능력이란 무엇인가


IQ를 꼽을 수도 있고, 수능 점수나 자격증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전문지식, 역량, 소통능력, 협업능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능력은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20년 동안 사원인 A씨가 아닌 기능올림픽에 출전한 최은영 씨처럼 될 수 있을까.


능력은 경력이다


능력과 경력이 같다고 보면 과장이지만, 능력을 경력 없이 만들 수 없다는 데에는 과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능력은 곧 경력을 담보한다. 이력과 경력을 요구하는 취업전형에 대학생, 취준생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도 이거다. 경력이 없다면 능력도 없다. 어떤 프로젝트를 얼마나 잘 해왔는지, 하나둘 쌓아서 경력을 만들고, 이를 능력이라 부른다.


여성 임원이 적은 이유를 누군가는 능력 부족이라고 쉽게 말하곤 한다. 아마 IQ나 수능 점수를 능력이라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여성 임원이 적은 이유는 여성 부장이 적기 때문이다. 여성 부장이 적은 이유는 여성 차장이 적기 때문이다. 여성 차장이 적은 이유는 여성 과장이 적기 때문이다. 여성 과장은 적지만, 여성 대리는 많고, 여성 사원도 많다. 여성뿐 아니라, 고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고, 장애인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기도 하다. 애초에 경력을 쌓을 기회가 없으면 능력도 없다.


투혼을 발휘한 분의 능력을 강조하는 게 곧 20년째 사원인 분에 대한 비하가 된다. 그렇게 칭찬은 여성혐오가 된다.


자전거 타는 사람

당신의 다리는 둥글게 굴러간다.
허리에서 엉덩이로 무릎으로 발로 페달로 바퀴로
길게 이어진 다리가 굴러간다
당신이 힘껏 페달을 밟을 때마다
넓적다리와 장딴지에 바퀴 무늬 같은 근육이 돋는다
장딴지의 굵은 핏줄이 바퀴 속으로 흘러간다
근육은 바퀴 표면에도 울퉁불퉁 돋아 있다
자전거가 지나간 길 위에 근육 무늬가 찍힌다

 _김기택 「소」


피를 흘려 가며 가구를 만들었다는 기능올림픽 이야기를 듣고, 얼마 전 읽은 김기택의 시가 생각났다. 근육은 바퀴로, 길로 내려가 찍힌다. 쿵쿵 두드리는 망치가 유리천장에 금을 내는 작은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투표 안 할 건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