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임상균 「도쿄 비즈니스 산책」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은 장기적으로 일본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의 트렌드를 소개하는 책이다. 일본에서 먼저 유행하면 몇 년 후 한국에서도 비슷한 유행이 나타날 수 있다.
혼자
요즘에는 조금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한국 사람은 잘 못하는 게 혼밥이다. 반면 일본 사람에게 혼밥은 일상이다. 혼자 밥 먹는 걸 넘어 이제 혼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혼자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일본의 테마파크에는 혼자 방문한 사람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나가사키 현의 유명 테마파크인 하우스텐보스에는 솔로들끼리 모여 일루미네이션을 즐기고 놀이기구도 같이 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골프도 동반자가 있어야 가능한 스포츠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골프는 자신 외에 세 명의 친한 사람을 더 구해야 칠 수 있는데 이게 쉽지 않다. 그래서 골프장 운영기업인 오릭스골프매니지먼트는 혼자 오더라도 전국 22개 코스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연령, 핸디와 함께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제출하면 골프장이 여기에 맞춰 또 다른 손님들과 팀을 구성해준다.
자판기
자판기로 유명한 일본이다. 우리나라는 라면이 자판기에 나오는 것만으로 다들 놀란다. 일본은 음료, 담배, 술은 기본이고, 각종 튀김류와 구이류를 자판기로 판다.
과일 자판기도 있다. 고베의 엠브이엠이라는 유명한 청과물 가게가 2007년부터 전국에 설치한 사과 자판기는 껍질이 벗겨진 것은 물론 먹기 좋게 잘라진 채로 사과가 나온다.
기계
식당에서 주문받는 키오스크는 이제 우리나라도 많아져서 익숙하다. 일본은 나아가 주방일도 기계가 한다.
도쿄 스기나미 구에 포장 만두 전문점인 잇부크는 하루에 1천 상자 이상 만두를 판매하지만, 가게 안에는 사장 혼자다. 만두는 기계가 만든다. 만두피와 속을 만들어서 기계에 준비만 해놓으면 주문을 받을 때마다 버튼을 눌러서 만든다. 이 가게는 연말연시를 제외하고는 연중무휴다. 만두 제조 기계 덕분에 사장 혼자서도 아무 문제없이 가게가 돌아간다.
미팅
일본의 지자체는 미팅을 주선하다. 마치존이라 불리는 소개팅이 열리면, 사람들이 신청한다. 참가자들은 지정된 식당과 술집에서 자유롭게 먹고 마실 수 있다.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성 만남을 목적으로 온 것이니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음에 안 들면 이동하면 된다.
이렇듯 마치콘은 젊은 청춘들만 좋은 게 아니라, 침체된 지역 상권을 살리는 데도 한몫 독특히 한다. 큰 마치콘인 경우 한 번에 수천 명이 참석하기도 한다. 참가 업체들은 주최 측으로부터 그날의 식사와 술값을 받는다.
책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츠타야를 알 것이다. 커피와 책을 결합한 공간으로 유래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새로운 시도는 계속 이어져 가전제품과 책이 연결되기도 하고 운동이나 음악이 책과 결합되기도 한다.
1층 정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가전제품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책이 가득 꽂힌 책장 사이사이에 싱그런 나무들이 있고 그 밑 푹신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옆에 놓고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한 채 책을 읽는 살마들이 여유로워 보인다. 문구 판매점과 자전거 매장도 있다. 자전거 매장은 주로 고급매장이 많다.
베스트셀러
요즘 일본에서 뜨는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지나가던 직원을 붙들고 베스트셀러 코너가 따로 있는지 물어봤다. 없단다. 그러면 목록이라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저희는 그런 걸 만든 적이 없다"며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유가 더 기가 막힌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이라고 나에게도 재밌는 책이 될 수는 없죠. 저희는 책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독자의 선택을 가장 존중합니다."
츠타야에는 베스트셀러도 없지만, 수험서가 없다.
막걸리
일본에서도 막걸리를 판다. 한국 막걸리 중에서 나는 장수막걸리를 좋아하는데, 달고 탄산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 막걸리도 그런 느낌이라고 한다.
애국심까지 발동해 주저 없이 막걸리를 주문했다. 바삭한 튀김이 나오기 시작하고 막걸리도 한 순배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모금을 마시고는 모두들 표정이 이상해졌다. 익숙한 한국의 막걸리 맛이 아니라 약간 달짝지근한 맛에 탄산도 상당히 강했다. 마치 샴페인에 시큼한 식초를 넣은 듯한 느낌이었다.
김치를 따라 키무치를 만든 것처럼, 막걸리를 따라해 맛코리라고 부른다.
서서
한국에도 서서 먹는 고깃집이 한 때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유행이다. 저렴하고 빨리 술자리가 끝난다.
1000엔 안팎의 일본식 닭튀김인 가라아게나 다코야키 한 접시를 놓고 600엔짜리 생맥주 한 잔씩 들고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신다. 의자가 없어 테이블에 빙 둘러 서서 먹는다. 맥주 두어잔 마시고 나면 다리가 아파 더 서 있을 수도 없다. 퇴근길에 들려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 저녁 삼아 술을 마시고는 총총히 집으로 헤어지는 술집. 일본 젊은이들의 회식 문화다.
무덤
고독한 사람이 많은 일본은 죽음 후에도 고독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리 친구를 준비한다.
한국말로 무덤 친구라는 뜻인 이 프로그램은 같은 방식의 장례를 선택해 같은 자리에 묻힐 노인들이 사후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무덤 친구를 찾는 노인들을 모아서 생전에 미리 친해지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행도 다니고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지며 말동무도 한다.
코인
코인노래방의 유행은 말할 것도 없다. 코인빨래방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코인 주차장이 유행이다. 짜투리 땅이 있으면 시간당 주차요금을 받는 주차장으로 활용한다. 구석구석 작은 땅을 활용하기 때문에 주차대수는 당연히 10대 미만이다.
도쿄의 빌딩 숲 사이 자투리땅에 불과 두 대만 주차하는 코인 주차장도 있다. 새로운 건물을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자그마한 땅을 놀리느니 주차장으로 돌려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자전거
자전거를 나라에 등록한다. 경찰도 이따금 검사한다.
어느 날,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하굣길에 경찰의 불심건문을 받았는데, 자전거의 주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파출소에 끌려왔다는 것이다. 일본에 도착해 인터넷으로 한 교포에게 중고 자전거를 구입했는데 귀찮아서 등록을 차일피일 미루던 터였다. 전혀 다른 동네의 무관한 사람의 자전거를 고등학생이 타고 있었으니 영락없이 자전거 도둑으로 몰릴 판이었다.
책의 부제는 '나는 도쿄에서 서울의 미래를 보았다'다. 다 읽고 나니 과연 서울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이 책이 2016년에 나왔으니, 거의 최신이다. 거의 미래가 보인다.
★★★★★ 재미있다. 정말 일부는 한국에서도 유행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