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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an 04. 2020

나는 대안이 되고 싶다

 _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엄마는 페미니스트」

작가의 이름이 아주 길다. 나이지리아 출신이라 그런가 보다. 이름만 봐도 어느 부족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아주 얇은 책이다. 거대 출판사인 민음사에서 작고 이쁜 책들을 내면서 골목 상권까지 다 잡아먹으려고 아주 발악을 하는데, 이뻐서 샀다. 이 나쁜 놈들.



작가가 유명한 페미니스트다 보니 지인이 물어봤다고 한다. 자기 딸을 어떻게 하면 페미니스트로 키울 수 있냐고. 질문을 들은 순간에는 모르겠다고 답했고, 천천히 생각을 해서 뒤늦게 이 책을 썼다. 페미니스트라면 아마도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고, 그래서 어마어마한 내용은 없다. 실천의 영역으로 남은 게 너무 많다는 게 문제지. 우리는 누구나 아이 앞에서는 세상을 아름답게 이해하고 설명하고, 타인에게 관대해진다.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아이 앞에서는 그렇게 된다. 나도 평소에는 나이롱 페미니스트지만, 아이 앞에서는 세상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될 거다.


저자는 몇 가지 제안을 한다. 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성 역할'은 완벽한 헛소리라고 가르칠 것.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아이에게 제약과 한계를 안겨준다. 세상의 영향을, 주위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지만, 가능한 한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게 자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녀가 한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엄마들이 아기를 데려와서 같이 노는) 놀이방에 갔을 때 딸 가진 엄마들이 계속 "만지지 마."나 "그러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고 하면서 굉장히 아이를 제지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대. 반면에 아들 가진 엄마들은 좀 더 돌아다니라고 부추기고, 딸만큼 제지하지도 않고, "얌전히 있어."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차렸지.


아이의 일, 특히 외모와 관련된 일에 신중해질 것.


아이들이 우리 세대만큼 외모에 좌지우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만큼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여아재들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대부분 운동을 그만둔다고 해. 놀랍지 않은 일이지. 가슴이 발달하는 것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 운동에 장애물이 될 수 있으니까. 나도 가슴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축구를 그만뒀어. 가슴을 숨기고만 싶었기 때문에 뛰어다니거나 태클하는 건 도움이 안 됐거든. 치잘룸에게는 그것이 장애물이 되지 않게 해.


치잘룸은 친구 아이의 이름이다.


절대로 아이의 외모와 도덕성을 연결 짓지 마. 짧은 치마가 '부도덕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 옷 입기는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과 매력의 문제라고 가르쳐. 너랑 치잘룸이 그 애가 입고 싶어 하는 옷에 대해 의견이 충돌했을 때 너희 엄마가 그러셨듯이 '창녀 같아 보인다.'는 것 같은 말은 절대 하지 마.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미디어와 SNS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부모가 노력해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안이 되고 싶다. 남성의 역할, 여성의 역할이라는 관념을 아이가 배우더라도 그와 어긋난 어른들이 주위에 있다면, 아이들은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을 거다.


대안의 위력은 과장하려야 할 수가 없어. 치잘룸이 어렸을 때부터 대안에 익숙해져 있다면 '성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에 반박할 수 있을 거야. 그 애가 요리를 잘 하는 ㅡ잘 하면서 유난 떨지도 않는ㅡ 삼촌을 안다면 '요리는 여자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아둔함을 웃으면서 무시할 수 있을 거야.

잘 하면서 유난 떨지 않는 게 포인트다. 유난 떨지 않기가 쉽지 않다.


저자도 머리가 아팠는지 아래와 같은 인사로 마무리 한다.


이 긴 글을 다 읽고 나니 머리가 아프니? 미안, 다음번에는 네 딸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한테 묻지 마.


★★★★★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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