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조승연 「나는 맹수의 눈을 갖게 되었다」
제목도 멋있고 표지도 그럴듯한 데다 심지어 얇기까지 한 책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책은 드물다. 그걸 이 책이 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뉴욕을 예찬하는 책이다. 뉴욕에 대한 동경이 있거나 여행이나 취업 등의 이유로 다녀올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재미있게도,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담고 있는 내용은 거의 니체 표ㅈ... 오마주다. 제목도 목차도 니체처럼 강렬하다.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비슷하다.
니체의 저작 「이 사람을 보라」는 자기홍보서다. 목차는 아래와 같은데, 전부 자신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이번에는 이 책의 목차를 보자. 뉴욕의 이야기를 하며 뉴욕에서 자란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거리를 항해할 줄 안다
나는 가식을 걷어찰 줄 안다
나는 생존의 치열함을 안다
내가 스스로 해낸 것이 아니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살 줄 알지만, 모든 것을 가져본 사람이다
나는 제도와 현실을 넘어서서 싸울 줄 아는 용사다
나 또한 지도자이자 생존자이다, 나는 너와 동등하다
기억에 남는 구절을 소개한다.
뉴욕을 체험한 사람의 눈빛 속에는 다른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뉴욕의 광채가 남아 있다. 그들은 뉴욕에 들어와 생존력과 자신감과 자생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 뉴욕을 빠져나간다. 사람으로 뉴욕에 도착했으나 뉴요커가 되어 뉴욕을 나가는 것이다. ... 그들의 눈빛에 서린 불빛은 맹수가 초식동물을 노릴 때의 자신감, 사냥하는 사람의 무서운 공격적 의지이다.
나는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해 보았다. 그중에 뉴욕처럼 인간적인 도시는 서울 한 곳뿐이었다. 저녁 시간에 서울의 먹자골목이나 유흥가를 지나면서 뉴욕에서와 똑같은 진동을, 인간 본능의 진동에서 밀고 올라오는 광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한국 연예인 얼굴이 그려진 양말을 비싼 돈 주고 사는 일본인들을 비웃는다. 하지만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뉴욕 패션 마케터 눈에는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똑같은 봉으로 보인다. 우리 학교에 초청돼 강의를 한 여러 명의 명품 마케터들은 하나같이 "뉴욕에서 물건이 안 팔리고 재고가 나면 무조건 아시아로 보낸다. 거기서는 재고품도 두 배 가격으로 팔 수 있다. 이런 것을 바로 시장 다양화 전략이라고 한다"라고 주장했다.
양떼는 맹수를 보며 말한다. 저 맹수들은 우리 양떼를 공격하는 사악한 존재들이다. 우리 같이 약한 자들만 착하고 좋은 존재다. 이렇게 초식동물은 자신의 무능력을 정의로 바꾼다. 하지만 맹수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양떼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 양고기는 무지하게 맛있다."
레스토랑에 앉아 사슴고기를 입에 넣고 비싼 와인도 음료수일 뿐이라며 시원하게 넘기는 뉴요커의 얼굴에는 불상에서나 볼 수 있는 완벽한 평화가 맴돈다.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즐기며 살아가는 뉴요커들이 "나는 먹이사슬의 마지막 고리다"라고 당당하게 소리치는 듯하다. 나는 그토록 자유롭고 위엄 있는 모습을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 뉴욕의 레스토랑은 "몸으로 일하고 몸으로 보상 받으라"는 뉴욕 철학의 표본이다.
저자는 말을 정말 잘한다. 티비에서 많이 봤다. 분명 인문학적 지식을 이야기하는데, 전혀 지루할 틈 없이 그리고 이해못해서 갸우뚱할 일 없이 듣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신기하다. 분명 니체에 대한 오마주 느낌인데, 책에는 니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니체를 느낄 수 있다니. 지식을 완전히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언어로 풀어설명한 것이다. (그게 아니면 그냥 허세)
★★★★★ 저자가 지금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무조건 이불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