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우리를 가지고 논다. 저자에게 농락 당한 기분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쭈욱 훑는다. 그리고 밝힌다. 사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각 개체는 열심히 일하지만, 사회는 각 구성원이 원하는 형태로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추가로 노동을 더 하려고 결정할 때, 가령 씨를 표면에 뿌리기보다 괭이로 땅을 파기로 결정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면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수확량이 많이 늘어날 거야. 흉년 걱정을 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거야. 아이들이 배가 고픈 채로 잠자리에 드는 일도 없을 거야.' 그것은 이치에 닿았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계획은 그랬다.
이 책의 묘미는 우리의 편견을 하나하나 박살내는 것이다. 한두 개도 아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을 다 쓰레기통으로 내던지고, 새롭게 판을 짠다.
인류의 역사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이렇게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인지혁명
먼저 인지혁명이다. 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내용이다.
사피엔스가 다른 종과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거다. 허구, 상상을 이야기할 수 있다. 국가, 기업, 종교 다 상상이고 허구다. 심지어 자본주의, 인권, 정의까지 다 허구다. 허구라는 게, 단순한 거짓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재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믿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거짓말과 달리 가상의 실재는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공통의 믿음이 지속되는 한, 가상의 실재는 현실세계에서 힘을 발휘한다. 슈타델 동굴의 조각가는 사자-남자 수호령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었을지 모른다. 마법사 중 일부는 사기꾼이지만, 대다수는 여러 신과 악마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었다. 대부분의 백만장자는 돈과 유한회사의 존재를 신봉한다.
대부분의 인권 운동가들은 인권이 존재한다고 진지하게 믿는다.
농업혁명
농업혁명은 인류의 진보라고 배웠다. 인구가 급격히 늘게 되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저자의 입장은 정반대다. 수렵채집인의 생활은 훨씬 더 풍요로웠고, 농업인의 삶은 열악했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사실이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생산된 잉여생산물은 새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최소한의 시간만 사냥을 하던 수렵채집의 시기보다 더 많이 일한다. 다양한 음식물을 섭취했던 시기보다 더 탄수화물에 치우친 식사를 한다. 저자는 말한다. 농업혁명은 사기라고.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으로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와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과학혁명
3만명을 배에 태우고 다닌 명나라의 정화는 다른 나라를 약탈하거나 정복하지 않았던 반면,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아시아를 정복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이고, 저자는 무지의 발견이라고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공자님 말씀을 구하면 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신부님에게 신의 뜻을 물어보면 되던 때가 있었다. 이를 지나서, 직접 알아보고 싶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신대륙을 탐험하고 지도를 만들며, 세포를 들여다보고 질병을 연구하게 만든 것은 다 무지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한 순간, 사람들은 지식에 목마름을 느끼기 시작했다.
진화
3가지 혁명을 통해서 사피엔스라는 종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각 개체는 행복하지 않다. 소나 닭을 생각해보면 처지가 이해된다. 진화의 측면에서는 밀, 쌀, 인간 만큼 성공한 종이지만, 실제로 닭 한 마리, 소 한 마리는 비참한 현실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내리는 결론은, 역사의 진행 방향은 각 개체의 복지와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반전이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대략 비슷하다. 외부 환경, 즉 사회보다 가족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그리고 가족보다 자신의 생체 리듬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원래 행복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전쟁 중에도 낙천적일 것이다. 원래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도, 마약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이다.
역사가 발전해온 방향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니. 그 문장 밑에 숨겨진 의미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쉬워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아니다. 사실 역사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비슷한 행불행을 느낀다. 여기도 끝이 아니다.
행복은 단순히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하다.
이제는 행복마저 부정한다.
인류의 역사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두둥. 원래 역사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런데 두둥. 행복 별거 아니다. 그냥 느낌이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신체 내부의 쾌락적인 감각이다. 방금 복권에 당첨되거나 새로운 연인을 찾아서 기뻐 날뛰는 사람은 실제로 돈이나 연인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혈관 속을 요동치며 흐르는 다양한 호르몬과 뇌의 여러 부위에서 오가는 전기신호의 폭풍에 반응하는 것이다.
이 두꺼운 책을 통해서 장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걸 다시 뒤집는다. 단순한 역사학자도 문화인류학자도 아니다. 독자 멘탈을 탈탈 턴다. 이 글의 맨 처음에 썼던 문장을 다시 쓸 수밖에 없다. 우리를 가지고 논다. 저자는 아주 큰 사람 같다. 명상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매일 2시간, 매년 2달 정도 명상을 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 읽은 문구가 생각난다.
중요한 것은 우주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ㅡ꿈 이야기를 쓸 수는 없다. 그저 꿈에서 깨어날 뿐이다.
_무케르지 「브라만과 파리아」
무케르지의 말대로, 유발 하라리는 역사의 변두리만 돌지 않았다. 몇만 년의 긴 역사를 이야기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현재다. 사피엔스라는 거대한 종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나는 한 개체일 뿐이다. 돌고 돌아서 결국 중심으로 오는 게 우주라고, 저자는 우리를 돌리고 돌리며 설명한다. 빙빙 돈다.
★★★★★ 설명보다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 무게만큼 아주 무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