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히가시노 게이고 「연애의 행방」
추리소설의 대가가 연애소설을 쓰면 어떨까? 그 대답이 여기에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연애의 행방」이다. 그의 추리소설이 그렇듯, 정신없이 빠져들게 하고 생각지 못한 반전에 내쳐진다. 아니 연애소설이 왜 이렇게 사람을 긴장하게 하지?! 하고 놀라며 읽게 되는 소설이다. 300페이지의 얇지 않은 책이지만 정신없이 읽게 된다. 흡입력이 있다.
스키장이 소설의 주 무대다. 한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데, 앞에 있던 여자가 마스크를 벗는다. 두근두근!! 얼굴을 보니 현 여친!! 이런 식이다.
그렇게 말하고 빨간 보드복의 여자가 고글을 벗었다. 그 참에 페이스마스크가 벗겨지면서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순간, 고타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빨간 보드복의 여자는 미유키였다.
그리고 미유키는 고타의 동거 상대였다.
남자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런데 현 여친은 바로 앞의 남자가 바람피고 있는 자신의 남친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현 여친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던지고, 남자는 혼란에 빠진다.
아니,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실은 눈치챘으면서도 일부러 '믿을 만하다'라는 말을 써서 고타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한다, 라는 작전일 수도 있다.
"근데 만일 그 사람이 바람을 피우면 어떡할 거야. 약혼은 없었던 일로 하는 건가?"
에리카의 질문에 고타의 심장은 다시금 오그라들었다.
미유키는 잠시 생각해본 뒤 "그건 아냐"라고 대답했다.
"헤어지지 않겠다고?" 치하루가 놀란 듯이 말했다.
응, 이라고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라고 미유키는 말했다.
"내가 추궁하기 전에 자수했을 경우에 한해서야. 그런 게 아니면 안 돼. 어차피 금세 꼬리가 잡힐 테니까 내가 먼저 눈치는 채겠지. 하지만 유예기간을 줄 거야. 그 사이에 자기 스스로 솔직히 털어놓는다면 세이프, 그렇지 않으면 아웃, 내가 이래봬도 온정은 베푸는 편이야."
엇, 이건 또 뭔 소리인가ㅡ. 고타는 머리를 굴렸다.
미유키가 이곳에 고타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 이미 유예기간이 시작된 셈인가. 그 타임 리미트는 언제까지인가.
반드시 자수를 해야만 용서의 기회를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건 현 여친이 눈치채고 기회를 주는 건가. 아니면 아직 모르는 건가. 두근두근!!
소설의 첫 장면이다. 이건 시작이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까지 독자의 마음을 끊임없이 쥐락펴락 한다.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가지고 노는 걸 보면, 작가는 분명 기술자다. 문학은 예술의 영역이지만, 기술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 이렇게 하면 독자들이 긴장할 거고, 저렇게 하면 깜짝 놀랄 거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쓴 소설이다.
연극 중에서도 비슷한 게 있다. 「라이어」도 그렇고 「룸넘버13」도 그렇다. 주인공이 바람을 피워서 걸릴 듯 말 듯한 위기 상황이 연극의 배경이자 스토리다. 연극이 진행되는 한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관객의 심장을 이리 던졌다 저리 던졌다 한다. 이 책은 그 소설 버전인 셈이다.
맨 앞부분을 제외하고는 어느 장면을 이야기해도 스포가 될 것 같아서 내용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오락성은 별 다섯 개인데. 의미나 메시지는 없다. 그냥 재미있는 걸 보고 싶다면 완전 강추. 하지만 딱 거기까지.
★★★★★ 심장이 정신 못 차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