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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Feb 06. 2020

남의 편지를 본다는 것

 _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두근두근하며 읽었다. 고흐의 그림이 잘 되어가면 내가 기쁘고, 고흐가 돈 때문에 병 때문에 절망에 빠지면 내가 슬펐다. 이렇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읽게 되다니. 나도 놀랐다.


미술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여러 번 시도했다. 하지만 절반 이상 읽은 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 중도에 덮었다. 저자는 열정에 차서 설명하지만, 나에게는 단순한 미술사조에 대한 설명이다.


이 책은 조금 달랐다. 고흐는 겨우 8년 정도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이 변하는 게 눈에 보였다.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얼마나 신났는지 편지를 통해 절절히 느껴졌다.



고흐가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책이다. 고흐는 서른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했고 동생인 테오는 금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래서 편지에는 종종 돈을 보내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고흐가 직접 쓴 편지기 때문에, 내밀한 이야기가 전부 담겨 있다. 민망할 정도다.



갈등


성격이 괴팍하고 열정이 넘치는 고흐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갈등한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몸도 축난다. 돈이 부족해서 끊임없이 테오에게 물감을 보내달라 돈을 보내달라 요청한다. 그래도 아등바등 노력한다. 당당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곧 더 자세히 쓰겠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을 불행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속에서도 차분함을 느낀다. 위험의 한가운데 안전한 곳이 있는 법이지.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



고민


돈이 많이 들어가서 고민하고,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림이 왜 안 팔릴까 고민하고, 그림이 팔린다고 해도 테오가 쓴 돈을 만회할 수 있을까 또 고민한다.


그림 몇 점을 보낸다. 네가 그걸 보면 하이케의 풍경을 떠올릴 거다. 그런데 이제는 제발 솔직하게 말해 다오. 왜 내 그림은 팔리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그림을 팔 수 있을까? 돈을 좀 벌었으면 좋겠다.



캔버스


너무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화가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래도 캔버스는 두렵다. 그 앞에서 당당하려고 노력한다.


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무엇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질투


다른 화가들, 이미 성공했고, 인정받은 화가들을 질투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절실히 염원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그리는 법을 알아내고 싶다. 마네는 그렇게 하는 데 성공했다. 쿠르베도 그랬고. 아, 망할 자식들! 나도 그들과 같은 야망이 있다. 졸라, 도데, 공쿠르 형제, 발자크 같은 문학의 거장들이 묘사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골수 깊숙한 곳에서부터 느낄 때면 그 욕망은 더 강하게 불타오른다.



초기에는 주로 어두운 그림을 그린다. 일본 그림의 영향을 받아서 밝아지기도 한다. 나중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랗고 어두운 하늘이나, 황금빛 그림들이 나온다. 마지막에 그린 작품은 정말 좋다. 미치지 않고선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그의 광기는 그를 죽였다. 그지만, 그림을 보면 느낄 수 있는 터치들이 있다. 분명 이 터치는 광기가 그린 거다, 하는 터치.


이게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렇게 모니터로 보니 느낌이 다르다. 인쇄된 그림과 모니터의 그림이 이렇게 다르니, 실물로 보면 얼마나 어마어마할까.


★★★★ 소설보다 더 이입하게 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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