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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Feb 08. 2020

때려줘서 고마워요

절실함이 필요했던 시기가 있었다. 자본이 부족해서 오로지 노동력에 의존해야 했던 시기. 대표적으로 박정희 정권. 그땐 그랬다. 정부는 어떻게든 자본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노동자들은 약을 먹으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돈을 받고 일본에게 받을 사과를 퉁치고 기생관광을 장려하고 베트남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기초가 될 자산을 마련했다.


1959년의 대한민국에는 노동력만 있었고 자본과 생산기술이 없었다. 부정부패와 독재가 판치는 세상이라 신뢰가 형성되기도 어려웠다.
 _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하다. 경제 성장은 자본과 노동 그리고 기술의 합산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시간을 안전 장치 없이 일했고,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 헝그리 정신, 즉 절실함을 요구했다. 가진 게 몸 뿐이니, 스스로를 혹사시킬 수밖에.


ㅡ일본 경제가 어렵고 힘이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앞을 보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골 정신이 없습니다. 헝그리 정신이 결여돼 있죠. 다른 사람들과 색다른 뭔가 다른 것을 하려는 생각이 없는 편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지만... (웃음)"
 _조선비즈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경영대가 100」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채택한 북한이 혁명이념을 주입해 '천리마운동'과 '새벽별 보기 운동'에 노동자를 동원하던 그 기간에 자본주의 계획경제를 선택한 대한민국에서는 더 나은 물질적 삶을 바라는 욕망과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망이 노동자들을 '만리마운동'과 '별도 보지 않고 밤새 일하기 운동'으로 몰아넣었다. 노동자들을 잠을 쫓기 위해 '타이밍'이라는 이름의 알약을 먹으면서 철야 작업을 했고 공장 관리자들은 옷핀으로 팔을 찔러 피로에 지쳐 조는 여성 노동자를 깨웠다.
 _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절실함에서 성과가 나온다는 사고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서편제」다. '한'이라는 출처불명의 개념을 가져와서 비참한 상황을 만든다. 몸이 편하면 좋은 소리를 낼 수 없다고 판단한 판소리꾼은 딸의 눈을 멀게 한다. 말도 안되는 아동학대 영화인 셈인데,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변태적인 설정에 사람들이 동의했다는 건 아니겠지만, 절실함이 성취의 조건이라는 점에는 사람들이 동의했다는 결과일 거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눈도 멀고 배수진을 치고 소리하는 것보다, 여유 있는 부모 아래에서 사랑받으며 좋은 학원, 좋은 강사에게 교육을 받으며 소리하는 게 성공의 정석이다.


가끔 절실함을 원하는 마음을 본다. 대표적인 게 서바이벌이다. 「슈퍼스타케이」, 「프로듀스101」 같은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절실함을 보여주고 평가한다. 요즘에는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인기다. 단순히 아름다움 하나로만 줄 세우는 건 너무 천박해 보인다. 그래서 절실함을 꺼낸 것도 맞지만, 동시에 시청자들은 이런 드라마를 원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호감이고, 가장 역할이라도 하면 더 열광한다.


박진영은 아이돌을 칭찬할 때 절실함이 보인다고 말한다. 반대로 아이돌을 욕할 때는 절실함이 없다고 말한다.


영화 「4등」에는 수영하는 아이가 나온다. 3등 안에는 들어야 메달을 따는데, 안타깝게도 주인공인 아이는 매번 4등을 한다. 엄마는 아이를 '4등'으로 부른다. 극약처방으로 유능하다는 코치를 찾아간다. 유능함의 원천은 폭력에 있었다. 성적에 따라 매를 맞던 아이는 결국 성적이 올랐다.



우리는 그 코치에게 때려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그 판소리꾼에게 고마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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