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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Feb 19. 2020

바보처럼 보이기

나는 항상 멋있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했다. 인정욕구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다.


바보처럼 보이기를 선택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남과 비교할 수 있는 도토리가 아니며, 오히려 한수 위라는 확신을 스스로 가지고 있거나, 그러한 판단으로부터 초월해야 한다. 둘 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말의 요지는, 사람들이 우리의 그림을 보고 기술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술의 비밀을 잘 파악하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작업이 너무 능숙해서 소박해 보일 정도로 우리의 영리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지. 내가 이런 경지에 도달했다고는 믿지 않네 나보다 앞서가는 자네조차도 아직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보네.
 _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는 바보 같이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어설프게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진다. 나는 주로 이 상태다. 자신감에 확신이 붙으면 오히려 겸손하게 된다.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 굳이 모양 빠지게 뽐낼 필요없다는 태도다.


내 경우는 단단히 움켜쥐기보다는 쓰다듬는 것을 좋아한다. 목표를 향해 곧장 달리기보다는 기분 좋게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더 좋아하며, 누군가에게 금방 다가서기보다는 다가가기 전에 잠깐 그 사람 앞에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또한 모든 것에 능통한 자로 보이기보다는 어수룩한 자로 여겨지는 것이 더 좋다.
 _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는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굳이 유능해 보일 필요조차 없다. 누군가를 압도할 이유도 기선제압할 이유도 없다.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한다. 이 정도면 경지에 이른 것 같다.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두 번째는 불가능할 것 같고, 열심히 노력하면 첫 번째는 가능해보인다. 어마어마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나, 굳이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 고흐가 되고 싶다. 참고로 나 고흐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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