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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Feb 22. 2020

행복을 찾는 명상

주의 : 이 글에는 똥 이야기가 나옵니다. 느긋하게 쉬고 있었는데 무슨 똥이야. 똥의 ㄸ만 들어도 똥냄새 나는 것 같아! 하고 화가 난다면 뒤로가기를 눌러도 좋습니다. 이미 범람하는 똥 이야기에 고막이 더려워진 것 같다면,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자유롭게 읽어주세요.


회사에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걸 확인하고, 약간 설레는 마음을 더해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때 신호가 왔다. 똥인가...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구내식당에 내려가서 밥을 먹었다. 우리 회사밥은 메뉴가 다양하다. 열가지가 넘는다는 건 장점. 주문형은 아니고 일반적인 회사 구내식당처럼 식판을 들고 일렬로 서서 마음에 드는 메뉴를 담아서 먹는다. 메뉴 가짓수로 보면 구글인데 맛은 김밥천국이다. 다 맛있지는 않고, 그렇다고 다 맛없지는 않고, 약간 복불복이다.


밥 먹고 바로 사무실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내가 있는 사무실은 5층. 회사건물은 21층이어서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서부터 열심히 걸어올라갔다. 꼭대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돌아와 앉았다. 운동 삼아 항상 이렇게 올라온다. 미약한 신호가 약간 살아있음을 느끼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자리로 돌아와 책을 꺼냈다. 한 20분 정도 식사하고 와서는 책을 읽는다. 오늘 읽은 책은 「열두 발자국」이다.


여러분이 한국에서는 너무나 평범하게 주입받던 생각이 인도네시아에 가면, 혹은 스웨덴에 가면 "와,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지? 매우 창의적이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_정재승 「열두 발자국」


창의적인 게 별 거 아니군, 중얼거리며 밑줄을 친다. 나는 책을 몇번 읽으면서 머리 속에서 내용을 구조화 시키는데, 그때 밑줄 친 부분이 도움을 준다. 그리고 더 좋아서 나중에 또 보고 싶은 부분은 형광색 포스트잇을 붙인다. 간격에 신경써서 한땀한땀 붙인다. 책 고르는 것보다 포스트잇 붙이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아쉽지만 점심시간은 끝났고, 이제 때가 되었다. 화장실은 절대 점심시간에 가지 않는다. 업무시간에 간다. 그래야 똥 싸고 돈을 받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 지속가능한 월급루팡을 위해 꼭 지켜야할 수칙이다.


자리에 앉아 바지를 내렸는데, 내렸는데!! 핸드폰을 안 가져왔다. 나는 항상 책이든 스마트폰이든 읽을 거리가 필요하다. 어디든 책을 가지고 다니고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틈틈이 펼쳐본다. 어디 멀리 가기라도 하면, 혹시 모르니까 책을 두세권 챙기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화장실인데, 기세를 보아하니 아주 우렁찬 친구인데, 핸드폰도 없고 책도 없다. 이렇게까지 무방비로 들어온 적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 끌 수는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리고 잠시 어색했다. 손에 든 것도 없고, 눈을 둘 데도 없다. 어쩌다 보니 소장, 대장의 움직임에만, 똥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명상은 나에게 집중하는 거다. 숨에 집중하고, 폐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명상이다.


집중 명상의 도구로서 호흡을 이용하여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흡을 조절해야 한다. 호흡을 조절하려면 호흡의 리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리듬은 들숨과 날숨 사이의 움직임을 말한다.
호흡의 리듬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먼저 차분히 앉아서 눈을 감는다. 호흡에 집중하고 몸 안팎으로 오고가는 공기의 움직임을 의식한다. 자신의 호흡에만 오로지 집중해야 한다.
 _김어진 「명상, 깨달음으로 가는 길」


이것도 어찌 보면 명상이다. 배변명상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이상한 건 아니다. 틱낫한도 걸으면서 명상을 했다. 몸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집중하면, 그게 명상이다.


내 손을 잡으세요.
함께 걸읍시다.
단지 걷기만 할 것입니다.
어딘가로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걷는 것을 즐겁게 만끽할 것입니다.
평화롭게 걸으세요.
행복하게 걸으세요.
우리가 내딛는 걸음은 평화로운 걸음입니다.
우리가 내딛는 걸음은 행복한 걸음입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평화로운 걷기라는 것은 없고
평화 자체가 걷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행복한 걷기라는 것은 없고
행복 자체가 걷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걷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걷습니다.

 _틱낫한 「틱낫한의 걷기명상」


단지 싸기만 한다. 싸고 나서 비데로 할까 물티슈로 할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싸는 것을 즐겁게 만끽한다. 내가 싸는 똥은 행복한 똥이다. 그렇게 싸다 보면, 행복한 똥이란 건 없고, 행복 자체가 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는 알았을 것이다. 왜 이 글의 제목이 똥이 아니고 명상인지. 하지만 사실 안절부절 못해서 명상은 실패. 똥만 와장창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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