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다자이 오사무 「여치」
헤어지겠다는 말로 시작하는 글이다. 선언 같기도 하고 넋두리 같기도 하다.
헤어지겠어요. 당신은 거짓말만 해왔으니까요. 나한테도 잘못은 있겠지요. 하지만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이젠 스물넷이에요.
다자이 오사무 식의 유머가 빛을 발하는 글이다. 주인공의 남편은 화가다. 처음에 결혼했을 때와 달라진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며 성토한다.
원래 혼자리가 몇 건 있었다. 조건으로 봐서는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니어도 좋은 여자를 충분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의 그림을 보았다.
청색과 황색, 흰색이 전부인 그림이었어요. 당신의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을 만큼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이 그림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이해해줄 수 없는 그림이라고 확신했어요.
화가의 부인이었으니 당연히 가난한 살림을 이리저리 궁리해가며 꾸렸다. 주인공은 만족했다.
당신은 전람회라든가, 대가의 이름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당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만 그렸어요. 우리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괜히 가슴이 설레어 그런 생활이 즐겁기까지 했습니다. 남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에요. 집에 돈이 떨어졌을 때는 있는 솜씨 없는 없는 솜씨 다 발휘할 수 있어 더 재미있었어요.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발명해내는 일이 가슴 뿌듯하게 느껴졌었죠. 당신도 기억할 거예요.
하지만 이젠 틀렸어요. 사고 싶은 물건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면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시장에 가봐야 허무할 뿐이에요. 남들이 사는 물건을 나도 똑같이 사들고 돌아오는 무력함이 고작이에요.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찬사를 쏟아내고 돈이 들어오면서, 남편은 변했다. 사실 변했다기보다 그동안은 아무 말도 안하고 있어서 본의 아니게 신비감으로 포장된 것일 수도 있다.
전에만 해도 당신은 너무나 말수가 적어 '아! 이 사람은 이것저것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든 게 시시해져 숫제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있던 거구나.'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지요. 당신은 손님들 앞에서 형편없는 말씀을 곧잘 하곤 했어요.
나도 얼마 전에 애인에게 들었다. 굉장히 멋있는 사람이고 큰 사람인 줄 알았다고. 알고 보니 겁쟁이고 고집불통이라고.
음.. 역시 신비주의로 가야..
★★★★★ 다자이 오사무도 귀엽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