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앤드류 포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광고업자나 정치인이 진짜라고 우기는 허상에서 벗어나 삶의 진실을 되찾고 싶은 욕구
첫째, 진정성은 그게 아닌 것이 무엇이야를 짚어내 그 반대로 이해하는 것이 최적인 용어다. 둘째, 진정성이 뭐든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확실하게 원한다. 즉, 어떤 것을 '진정성 있다'고 묘사하면 그것은 언제나 좋은 것을 뜻한다.
루소가 고민한 철학적 과제의 본질적 관심사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처한 상태에서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문명은 인간 본성을 왜곡하지만, 그 왜곡의 정확한 윤곽은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루소가 시도하려는 것은 '나는 누구냐?'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 누구냐 하는 문제는 사회생활에서 쓰는 가면과 맡은 역할을 전부 벗어버리고 사소한 경쟁과 게임에서 물러나, 사회의 헛된 요구가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좇을 때 비로소 규명될 수 있다.
이 일은 결국 법정 다툼으로 번졌고, 판사는 원작을 복원하는 것이 의도였다면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덧칠했다 해도 문제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실레가 원작에 보라색으로 써넣은 성명 머리글자를 복원자가 검정색으로 덧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판사는 그것은 정도를 넘은 행위라고 보았다.
세상에서 100만 파운드로 살 수 있는 것 중에 유명 상표 현대미술품처럼 사회적 지위와 인정을 가져다주는 물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핵심은 허스트가 예술 작품이 아니라 중증 지위불안증에 걸린 부자들에게 치료제를 팔고 있다는 거다.
요즘 현대미술 작품들은 개념도 황당하고 솜씨도 미숙해서 "우리 애도 저 정도는 그리겠네"라는 문외한들의 전형적인 불평은 오히려 애들에게 모욕일 지경이다. 그러나 그런 불평은 초점을 벗어난다. 작품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팔리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페르소나 또는 '브랜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미술가 중에 데미언 허스트만 한 브랜드는 찾아보기 어렵다.
TV는 남녀 정치인의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그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적절히 행동할 줄 아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자질로 부각됐다. 사람들은 흔히 휠체어에 앉은 플랭클린 루스벨트는 요즘 같으면 대통령에 당선될 꿈도 못 꾸었을 거라고 말하는데, 1930년대에 TV가 존재했다면 아마 대통령은커녕 뉴욕 주지사도 못 됐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최고의 정책을 내세우거나, 제일 경험이 많거나, 가장 노련한 팀을 갖춘 후보가 아니라, 함께 맥주 마시고 싶은 사람을 매번 지도자로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