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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10. 2020

제목이 곧 내용

_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이런 제목인데, 이런 표지인데 어떻게 스테디셀러가 되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읽었다.



표지


일단 표지는 오랜만에 보는 똥이었다. 출판사가 어려운지 디자이너에게 돈을 안 준 것 같다. 편집자가 유튜브로 포토샵을 급하게 배워서 만든 듯한 표지다. 철학자들의 얼굴이 등장하는데, 어떤 건 일러스트고, 어떤 건 컬러사진이고, 어떤 건 흑백이다.


작가


내가 좋아하는 우치다 타츠루의 책이었다. 과연 쉽게 잘 풀어냈다. 우치다 타츠루는 얼마전 (항상 좋지 않았지만 특별히) 한일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 우리나라가 아니라 아베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책임을 지기 보다 차라리 파국에 이르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
우치다 다쓰루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69)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이렇게 평가했다. 아베 정권을 “전후 일본의 모든 정부 중 가장 무능한 정부”라고 평가한 그는 “모든 일본인들이 아베 정권의 행동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자기 파괴적 보복’이라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아베 정권 비판에는 거침이 없었다.
 _경향신문 「무능한 아베, 엉망진창 원해···파국 파트너로 한국 선택」 2019-07-24 기사


자기파괴적 보복이라니.. 표현이 절묘하다. 항상 그는 쉬운 단어를 이용하면서도 독특한 자기만의 언어를 구사했다.


우치다 교수는 “새 질서를 만들 힘도, 비전도 없는 아베 정권은 엉망진창의 파국을 기대한다”며 “나만 망하는 것은 싫다. 모두가 함께 망하면 내 무능력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아베 정권이 파국의 파트너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우치다 교수는 “한국 정부라도 지금처럼 이성적인 대응을 유지해야 한다”며 “양국 국민 간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것이야말로 아베가 원하는 바다”고 말했다.
 _경향신문 「무능한 아베, 엉망진창 원해···파국 파트너로 한국 선택」 2019-07-24 기사


내용


은 강의를 글로 옮긴 것이다. 구조주의 학자들의 생각을 간단하게 옮긴다. 당연히 구어체고, 일부 인용구가 있다. 읽기 쉽다. 원래 철학책은 저자에 따라서 난이도가 널뛰기 하는데, 구조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쉽게 쓴 책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책 많이 읽어본 척. 하지만 어려운 책은 어려워서 못 읽은 것뿐이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


사물이 먼저 있고, 나중에 여기에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소쉬르 이전에는 다들 이렇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소쉬르 이후로 달라졌다. 이름이 생기고 나서야 사물이 그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먹는 소고기도 살아서 뛰어다니는 소도 모두 다. 하지만 이 둘이 구분되는 언어체계도 있다. beef 와 cow는 엄연히 다르다. 우리나라는 나비와 나방을 구분한다. 하지만 사실 이 둘은 같은 종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둘 다 papillon이라 부른다. 북한에서도 나비와 나방을 구분하지 못한다. 언어가 나눠져 있지 않으면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언어활동이란 '모두 분절되어 있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를 정하는 것처럼 비정형적이고, 성운 모양을 한 세계를 쪼개는 작업 그 자체입니다. 어떤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이름이 붙으면서 어떤 관념이 우리의 사고 속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_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미셸 푸코


사람의 신체도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회제도가 먼저 있고 그 사회제도에 맞는 신체로 존재하게 된다.


개척 시대의 전설적 영웅들은 넓은 '공간을 차지한' 존재였는데 19세기 초반 북아메리카에서는 그것이 바로 그들이 지닌 사회적 위상의 기호였습니다. 그 시대 미국에서는 '신체는 크면 클수록 좋다'라는 신체관이 공공연하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로부터 200년 후 미국에서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사회적 위상은커녕 자기관리 능력의 결여라는 기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현대의 미국 신사는 필사적으로 다이어트에 몰두하고 세련된 옷차림을 하며 조심스러운 향수를 뿌리고 가능한 '눈에 띄지 않으며'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_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롤랑 바르트


다른 사람의 영향이 없는 순수한 예술 작품, 순수한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가능하다고 믿었던 시기가 있었을 뿐이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내가 쓴 글은 사실 여기저기서 보고 주어들은 이야기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합친 것이다. 직조된 텍스쳐인 것이다. 텍스트 자체가 여러 글쓰기를 합친 것인데, 이는 독자에게 도달했을 때 또 다르게 해석된다. 같은 단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수많은 문화에서 온 복합적인 글쓰기들(에크리튀르)로 이루어져 서로 대화하고 풍자하고 반박한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이 집결되는 한 장소가 있는데 그 장소는 지금까지 말해온 것처럼 저자가 아닌 바로 독자다. 독자는 글쓰기를 이루는 모든 인용들이 하나도 상실됨 없이 기재되는 공간이다.
 _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_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먼저 음운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에게 r과 l은 의미로 구분되지 않는다. rice와 lice. 발음을 들어보면 다르다는 걸 알 수는 있다. 하지만 구분하지 않는다. 중국어의 성조도 마찬가지다. 높은 음일 때와 낮은 음일 때 의미가 달라지지만, 영어나 한국에서는 음높이가 달라진다 하더라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걸 구분하고 구분하지 않을지는 약속에 의해 정해진다. 이 약속은 얼마나 세밀하게 구성될 수 있을까. 말소리를 임의로 잘라서 구분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많다. 자음인지 모음인지. 비음인지 아닌지. 끊기는지 연속성이 있는지 등 열두 가지의 특성으로 모든 언어의 소리를 분류할 수 있다. 그러면 2를 12번 곱한 수가 나온다. 2를 10번 곱하면 1024다. 그러면 이제 사회로 들어온다. 가족 제도는 사회마다 다르다. 그런데 이것도 몇 가지 특성으로 분절할 수 있다. 부자가 가까운지 먼지. 조카와 외삼촌이 가까운지 먼지. 남편과 아내가 친밀한지 먼지 등. 이렇게 가족제도도 2의 거듭제곱만큼 많아진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서로 싸우니까 평화를 위해서 사회를 만들었다. 혹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회를 만들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사회계약론이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순서가 잘못 되었다. 2의 거듭제곱만큼 많은 형태의 가족 혹은 사회가 존재하고 인간은 그 안에서 만들어진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는 건 인류 공통의 특징이 아닌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특징이긴 하겠지만.


이처럼 우리는 어떤 인간적 감정이나 합리적 판단을 바탕으로 사회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구조는 우리의 인간적 감정이나 인간적 이론에 앞서서 이미 그곳에 있고, 오히려 그것이 우리가 지닌 감정의 형태나 논리의 문법을 차후에 구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득적인 '자연스러움'이나 '합리성'에 기초해서 사회구조의 기원이나 의미를 찾으려고 해도 결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_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저자인 우치다 타츠루도 어른이 되기 전에는 레비스트로스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이해해서 이렇게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나도 언젠가 어른이 되면 조금 더 깊은 이야기도 이해할 수 있겠지.


★★★★ 이 책은 아이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어른이 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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