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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13. 2020

시스템 1과 시스템 2

 _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행동경제학의 고전이다. 처음 나왔을 때는 신선했을 것 같다. 지금은 워낙 상식이 되어버려서 새로운 건 없었다. 경제학에서는 사람을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으로 가정하지만 그걸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이제 없다. 가격이 비쌀수록 더 사고 싶어하고, 이미지만으로 대통령을 뽑기도 한다. 이렇게 완벽하지 않은 인간을 이야기하는 게 행동경제학이다. 심리학과 경제학의 만남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사고방식을 시스템 1,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시스템 2로 부른다. 이 두 가지 사고에 대해서, 정확히는 시스템 1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소개한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책을 읽지는 않았어도, 실험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다. 나도 대학생 때 수업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농구 영상을 보여주고 몇 번 패스했는지 수를 세라는 지시를 받은 학생들이 열심히 영상을 본다. 나도 열심히 셌다. 다시 영상을 돌려보니 농구장 한가운데를 고릴라가 지나갔다. 그냥 지나간 것도 아니고 중간에 가슴을 두드리고 나서 유유히 사라졌다. 그런데 숫자를 세느라 집중하느라 못 본 것이다. 우리의 집중력은 제한적이다.


위 영상이다. 알고 보면 의미 없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모두 우리가 깨어 있을 때 활성화된다. 시스템 1은 자동으로 작동하고, 시스템 2는 편안한 보통 상태에서는 별 노력을 요하지 않고 역량의 일부만 가능한다. 시스템 1은 시스템 2를 위해서 인상, 직관, 의도, 느낌 등을 지속적으로 제안한다. 시스템 2의 승인을 받으면 인상과 직관은 믿음으로 바뀌고, 충동은 자발적 행위로 변한다. 실제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때, 시스템 2는 거의 혹은 전혀 수정 없이 시스템 1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느낀 인상을 믿고, 자신의 바람에 따라 행동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고 양호하다.


두 시스템은 분업이 잘 이루어진다. 쉬운 일, 일상적인 일, 반복적인 일은 시스템 1이 맡는다. 머리를 써야 하는 경우, 새로운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는 시스템 2가 나선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이런 분업은 매우 효과적이다. 수고는 줄여주고 성과는 최대로 높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조합은 대부분 좋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시스템 1은 일상의 사건 처리에 매우 뛰어나고, 낯익은 상황에 대한 시스템 모델들도 정확하다. 단기적인 예측 역시 대부분 정확하고, 도전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민첩하고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시스템 1은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갖고 있는데, 바로 '편향'이다.
시스템 1의 또 다른 한계는 바로 그 작동을 잠시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관에 앉은 당신 앞의 스크린에 아는 언어로 표기된 단어가 등장한다면, 정신을 완전히 다른 데 팔고 있지 않는 한 당신은 그 단어를 읽게 될 것이다.


이게 시스템 1과 시스템 2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가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파악할 때 떠올리는 건 시스템 2다. 실제로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협력하고 분업한다. 시스템 1이 작용하는 예, 시스템 2가 작용하는 예를 두꺼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마케팅이나 소비심리 관련 책에서 많이 다루어서 이제는 뻔해져버렸다. 이 책이 원조인데 아류들을 먼저 읽어버린 듯하다. 재미있었던 걸 간단히 소개한다.


닻 내림 효과


미리 입력된 정보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닻 내림 효과다. 트럼프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무지막지한 숫자를 들이민다. 얼마 전에는 방위비 5억 달러를 요구했다. 적당히 협상하고 타협하겠지만, 먼저 큰 수를 불러놨기 때문에 합의한 결과도 작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아이오와 주 수시티에서 슈퍼마켓 쇼핑객들은 정가의 10퍼센트 정도 할인해서 파는 캠벨의 수프 판촉 행사를 접했다. 어떤 날에는 판매대 위에 '일인당 12개 한정'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었다. 또 어느 날에는 '무한정 구매 가능'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었다. 쇼핑객들은 구매 제한이 있을 때 평균 7개의 캔을 샀다. 무한정 구매 가능할 때 그들이 구매한 개수보다 두 배 더 많은 수였다.


이런 이야기다. 그 외에도 많다. 프레이밍 효과, 점화효과, 첫인상 효과 등등. 「넛지」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어렸을 때 읽었다면 더 놀랐을 것 같다. 그래도 정확한 이름을 갖는 건 좋은 일이다. 이제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고 불러야지.


★★★★★ 행동경제학을 쉽고 자세히 설명한 책. 비슷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면 추천. 이미 많이 읽어봤다면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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