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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21. 2020

고시원

고시원에 몇 년 살았다. 집 없는 민달팽이의 삶은 대단히 운 좋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레 겪어야 하는 대학입시 같은 거라 생각했다. 대학입시도 겪어야 했으니 고시원의 삶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요약하자면, 도저히 다리를 뻗을 수 없는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다. 그곳에서 공부를 한다. 그러다 졸음이 온다. 자야겠다. 그러면 의자를 빼서 책상에 올려놓는다. 앗, 책상 아래에 이토록 드넓은 공간이(방의 면적을 고려할 때 참으로 드넓은 공간이라 말 할 수 있다)! 그 속으로 다리를 뻗고 눕는다. 잔다ㅡ 였다.
 _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


공간이 생각보다 작았다. 생각보다.. 라는 건 여러 고시원을 둘러보고 최종적으로 정한 고시원의 공간이 그동안 보았던 고시원 보다 작았다는 뜻이다. 바닥에 누울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누운 공간 만큼의 공간이 더 있었다. 두 명이 누우면 붙어서 자야하는 크기라고 할 수 있다. 짐은 책상에 올려두었다. 바닥에 누우면 무릎 아래 부분은 책상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첫 달치 방세를 건네고, 장부에 신상을 기재하고, 키를 넘겨받던 그 순간 ㅡ 나는 갑자기 어른이 된 느낌이었고, 왠지 이 세계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멸망한 집에서 쉬쉬하며 그것들을 빼돌릴 때처럼, 나는 말없이 한 대의 컴퓨터와 다섯 개의 가방을 방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복도와 거의 폭이 일치하는 모니터를 나르며 친구는 이렇게 속삭였다.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_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


방세는 저렴했다. 학교 근처 고시원이 보통 30~40만원 정도 하던 때였다. 창문이 없는 방은 최소 30만원이었는데, 내가 지냈던 방은 무려 15만원이었다. 고시원에서 아마 유일한 학생은 나인 것 같았다. 외국인이거나 일용직으로 일하시는 분들이었다. 이렇게 저렴한 곳을 찾다니, 뿌듯했다.


컴퓨터가 문제였는데 모니터를 놓으면 의자를 올릴 수 없고, 즉 누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공간이어서 금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다리를 펴지 않기로, 했다. 결심을 하고 보니 과연 새우잠이 건강에 좋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듯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하고 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_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


고시원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생각보다.. 라는 건 고시원에서는 잠만 잤다는 뜻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학교 도서관에 갔다. 새로 증축한 도서관은 햇살이 들어오는 거대한 통유리 건물이었다. 책도 가득가득 했다. 돌아다니면서 어떤 책이 재미있을까 구경만 해도 한두시간이 훌쩍 지나갈 정도였다. 도서관 앞에는 실제 신문만한 크기의 커다란 터치스크린이 있었고, 손가락을 넘겨가며 다양한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마음껏 읽고 공부하며 즐기다가 졸리면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고시원으로 돌아와서 잤다. 고시원에서는 씻고 자기만 했다. 이렇게 매일매일 신문을 읽고 책을 읽고 공부를 했던 시기, 지식도 학교 성적만큼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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