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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pr 03. 2020

나만의 어휘를 만들고 싶어

네티즌이 드립에 집착하듯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접 만들어낸 어휘를 꿈꾼다.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어떻게 제목을 지을까, 어떤 단어로 짧고 효과적으로 전달할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기존에 있는 말을 잘 조합해서 그 의미를 새롭게 하는 방식은 연습이라 생각하면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습니다(물론 단번에 뛰어난 말을 만들긴 어렵지만요). 가령, 요즘 제 주변 문필업자들이 커피를 즐기게 되면서 '찻집에서 맥북을 펴 놓고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면 잘 풀린다'고 해서, 저는 그런 친구들을 '커피 라이터'라고 명명했습니다. 범용성이 떨어져서 별로 재미는 없지만 말입니다.
 _가와사키 쇼헤이 「리뷰 쓰는 법」


작가가 만들어낸 말 중에서는 '88만원 세대'를 좋아한다. 젊은 세대가 대부분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 그리고 이걸 만든 건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라는 통찰을, 통계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다. 3포세대, 4포세대는 그에 비해, 젊은 세대의 처량한 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요즘 스스로를 형용하는 말로 '설명충', '진지충'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브런치 아이디를 클릭하면 이 두 단어가 보일 거다. ㅇㅇ충은 일본에서 먼저 유행했다. 여기서는 벌레가 아니라 충실하다는 의미에서 충을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사용하는 ㅇㅇ충은 사실상 벌레다. 혐오스러운 단어인 충과 일상적인 단어, 혹은 심지어 귀여운 단어와 결합이 되면 매력이 배가된다. 저녁을 먹으면 저녁충, 퇴근하면 퇴근충, 책 읽으면 독서충, 좋아요를 누르면 따봉충, 한남충, 똥꼬충, 회충, 빠따충까지, 듣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아름다운 단어다.


오늘은 허리가 아파서 한의원 가서 침을 맞고, 이마트 가서 딸기와 와인을 사와서, 마시면서 글을 썼다. 그래서 오늘은 침충, 딸기충, 와인충이다.


신조어에 환장한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은 김난도다. 거의 페티시 수준이다. 올해 나온 「트렌드코리아 2020」만 봐도 굳이 만들 필요없는 신조어들로 꽉 차있다. 페르소나에 굳이 멀티를 붙여서 '멀티 페르소나'를 만들었다. 그냥 배달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되는 걸 '라스트핏 이코노미'라 명명한다. 팬문화가 적극적으로 되었다고 '팬슈머', 업그레이드를 좋아하면 '업글인간', 편리한게 인기 있다고 '편리미엄' 등등 아주 열심이다.


나도 나만의 어휘를 만들고 싶다. 신조어충, 김난도충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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