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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pr 05. 2020

염증

1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꾸 뭐가 나는 걸까

여드름은 사춘기 봄꽃처럼 찾아왔다


주위는 오지랖이 넘쳐났고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병원을 찾아갔다

역시 해답은 병원이다

걸리적거리는 게 있다면 병원에 가자!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내가 찾은 첫 번째 좌우명이었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니 탁 치는 무릎이 넘쳐났다

바꿀 수 없는 건 없애고, 없앨 수 없는 것은 하나씩 재수강 해나갔다


그래도 여드름은 꾸준히 문을 두드렸다 낙낙

우박처럼 다가왔다 청천벽력처럼 다가왔다

그래도 끝말잊기 하면 신나게 사용했다



2


어른스런 친구를 사귀었다 이름은 비비

이 크림만 있으면 자신감이 생겼다

아니 자존감


가릴 수 있다면 가려라! 꾸밀 수 있다면 꾸며라!

좌우명을 바꿨다.

알듯말듯한 세상에서 키높이처럼 소중한 좌우명이었다


어른스런 송중기가 썼다는 피부책을 읽었다

세수하고 나서 수건으로 마구 문대면 안된다고 낙낙

중요한 내용 같았으나 좌우명으로 삼기에는 약간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3


무엇을 갖고 싶으냐

과음하고 난 다음날이면 여지없이 산타처럼 찾아온다

갑자기 찾아온 열정에 고흐처럼 그림을 그리다 밤을 꼴딱 새우면

다음날 작품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여드름

할아버지 이거 말구요


신경 쓸 여유도 없다

정신 없이 살다 보면 여드름은 항상 어딘가에 꽂혀있다

어제 받은 명함처럼

스스로에게 채찍질 하며 불었던 겨울

바짝 마른 조기를 발라먹으며,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여드름은 고개를 숙인다


대머리가 되고 나니 여드름이 잘 안보인다

역시 고민은 더 큰 가발로 덮는거야!

새로운 좌우명을 모발이식 하듯이 한땀한땀 심었다

이제 세상을 조금 알 것 같다


깨달음을 얻은 스님이 대머리인 것처럼

성인이 되어도 성인 여드름은 찾아온다



4


여드름 패치라는 게 있었다

한달에 한번은 패치를 붙인다 며칠 지나면 없어진다

심하면 병원에 가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여드름도 충치도 없어진다는데, 산타 할아버지처럼 정정하시다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가끔 기분내고 싶어지면 비비를 바르기도 한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려니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나는 이거 하나를 기억한다


그러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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