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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24. 2020

우울하지는 않지만 읽어보는 니체

 _발타자르 토마스 「우울한 날엔 니체」

우울하지는 않았지만, 표지가 좋아서 읽었다. 고급스러운 질감의 책이었다. 니체는 개인적으로... 좋은지 싫은지 헷갈리는 철학자다. 밑도 끝도 없이 전부 다 박살내 버리는 모습을 보면 통쾌하기도 했다가, 너무 폭력적인 것 아닌가 하는 글을 보면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진 글은 나름의 맛이 있기는 하지만 깊게 빠지기는 어려운 텍스트였다.

 *아포리즘 :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 잠언. 격언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그냥 어렵고 있어 보이는 문장.


그래서 이번에는 니체의 저작을 직접 읽기보다 다른 작가의 설명서를 읽었다. 과연 이해가 쉬웠다. 역시 철학자의 책은 설명서를 읽어야 하나보다.



니체의 중요한 사상 몇 가지를 나름 쉽게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니체의 글은 워낙 친절하지 않으니, 긍정적으로 읽으면 파격적인 사상이 되고, 부정적으로 읽으면 반민주적인 사상이 되는데, 당연히 이 책에서는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현대인은 생물학상으로 가치의 모순을 나타낸다. 인간은 두 의자 사이에 앉아 있다.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입김으로 예와 아니오를 말한다.
 _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

문학적이다. 표현이 은유적이고 회화적이다. 인간의 모순적인 모습을 표현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영원히 힘들게 일하는 사회에서는 충분한 안전이 주어진다. 오늘날 사람들은 안전을 최고의 신성처럼 경배한다.
 _프리드리히 니체 「여명」

아무 생각없이 열심히 사는 삶을 경계한다. 근면함을 노예근성으로 치부한다.


만일 쾌락과 불쾌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누군가 가능한 전자를 더 많이 가지고자 한다면 또한 후자도 가능한 한 많이 가져야 한다. 하늘로 오를 것 같은 환희를 체험하고 싶다면 또한 죽을 것 같은 슬픔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_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삶의 오묘함을 명쾌하게 표현한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많은 사람과 일치하기를 원하는 이런 나쁜 취향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선'은 이웃의 입에 회자될 때 더 이상 선이 아니다. 어떻게 '공동선'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자체 모순을 범하고 있다. 공동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 가치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_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니체는 대중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스스로도 남다른 삶을 살았다.


각 문단이 끝나면 저자의 질문을 덧붙인다. 하나하나가 어렵고 무거운 질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 동원하는 도덕 원칙을 옹호하는가? 당신은 왜 비록 말로써만 그렇게 할지라도 당신의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어하는가? 왜 당신은 이 원칙 뒤에 숨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가? 만일 당신이 이 원칙을 포기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당신은 여전히 자신에게 몰두한 채 방향을 잃고 당신을 위협하는 내면의 힘에 직면해 있다고 느낄 것 같은가?
 _발타자르 토마스 「우울한 날엔 니체」
세계에 대한 당신의 시각이 당신의 해석과 필요성, 약함, 힘에 의해 규정된 사활이 걸린 당신의 관점에 불과함을 인식하고 있는가? 당신은 다른 관점, 어쩌면 당신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을 상상할 수 있는가? 어떤 필요성과 힘, 약함으로부터 당신의 것과 가장 동떨어지고 적대적인 것으로 보이는 세계에 대한 시각과 가치, 이상이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가?
 _발타자르 토마스 「우울한 날엔 니체」


★★★★ 역시 니체는 다른 작가의 설명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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