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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23. 2020

전현무를 시켰는데 다니엘 헤니가 나왔다

대학생 때는 대학생이니 주로 대학로에서 놀았다. 지금은 홍대에 종종 가지만 그때만 해도 홍대는 미술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번은 군대 동기와 홍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당시 신촌이 지고 홍대가 뜨던 시기였다. 이리저리 구경하며 돌아다니다,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아주아주 커다란 캔버스(과장을 보태면 웬만한 벽보다 컸다)가 벽마다 걸려있고, 아직 작업 중인 캔버스도 구석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카페의 절반 정도는 작업공간으로 쓰고, 나머지 절반만 테이블이 있는 카페 공간이었다. 커피를 시키며, 누가 봐도 알바생으로 보이는 분에게 물었다. 여기 사장님이 그림을 그리시나봐요. 알바생으로 추정되었던 분은, 네, 제가 그렸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놀랐고,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이후로 나에게 홍대의 카페*는 홍대 미대생이 그림을 그리며 운영하는 공간이었다.


*홍대의 카페 : 그건 그렇고, 고기리에 「홍대의 커피」라는 카페가 있다. 고기리에 막국수 먹으러 가면 가끔 들린다. 주차장이 넓어서 편하다. 사장 이름이 홍대의란다. 암튼 홍대의 카페가 생각났던 건 어제 갔던 카페 때문이었다.



직장인이고 운전을 하니 이제 대학로는 잘 안 간다. 대신 주차하기 편한 곳이나 뷰가 좋은 곳을 찾는다. 어제 마음에 드는 카페를 하나 찾았다. 여기저기에 직접 그린 듯한 그림들이 붙어 있고, 팔레트가 놓여 있었다. 작업하기 적합한 공간이 따로 있지는 않고, 인테리어 목적으로 늘어놓은 듯했다.



커피를 시키며, 누가 봐도 알바생으로 보이는 분에게 물었다. 여기 사장님이 그림을 그리시나봐요. 알바생으로 추정되었던 분은, 네, 제가 그린 것도 있고, 손님이 그린 것도 있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놀랐고, 홍대의 카페가 떠올랐다.


같이 간 친구는 요즘 본 TV프로그램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혼자산다」에 어제 전현무가 나왔는데, 기안84네 집에 갔더라고...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잠시 홍대의 카페를 떠올렸다.


헐. 진짜? 대박!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적재적소에 헐. 진짜? 대박!을 끼워넣었다. 정말 「나혼자산다」를 좋아하는 친구다. 이 친구도 혼자 산다.


헐. 진짜? 대박!


진동벨이 울렸고, 아메리카노와 케이크를 받았다. 진정으로 헐. 진짜? 대박! 을 외치게 했던 건 케이크였다.


카페에 있는 케이크는 보통 둘로 나뉜다. 납품 받는 경우와 직접 만드는 경우. 요즘엔 카페가 많아져서, 케이크를 제조해 카페에 납품하는 베이커리 회사도 많다. 소규모 카페에서도 다양한 케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된 이유다. 이런 케이크는 아무래도 특색은 없고, 평범한 맛이다. (아주 달달하고 맛있다는 뜻이다.) 가끔 특이한 케이크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직접 굽는 경우다. 여기는 후자로 보인다. (아주 달달하고 특이하고 맛있다는 뜻이다.)


인절미쑥 케이크... 정말 혼돈의 카오스, 충격과 공포를 느끼는 맛이었다. 빵은 쑥으로 만든 듯하고, 크림은 인절미를 넣은 듯하고 위에는 팥앙금이 올라가 있었다. 서양의 케이크과 동양의 인절미가 이렇게 조화롭다니, 케이크계의 다니엘 헤니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 처음 들어온 카페에서 별 기대없이 케이크를 하나 시켰는데 인절미쑥 케이크가 나와버린 거다. 「나혼자산다」를 보다가 전현무를 하나 시켰는데, 갑자기 다니엘 헤니가 나온 느낌이랄까.* 달달했지만 담백했고, 고소하면서도 산뜻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훌륭한 케이크였다. 고소한 아메리카노와도 잘 어울렸다.



* 이미 지난 일이지만, 전현무와 한혜진은 한때 헐. 진짜? 대박! 사귀었다. 다니엘 헤니가 등장하자, 한혜진이 달려가 포옹했고, 이걸 보고 질투하는 전현무의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당시에는 둘의 관계를 비밀로 하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은 (정확히는 이시언) 다니엘 헤니와 한혜진이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망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말이다.




카페 이름은 「오후애」다. '오후에'로 검색해서 조금 고생했다. 독서모임 하기 좋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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