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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11. 2020

자연스러운대추방울토마토

요즘 괴이한 과일을 찾았다. 토마토인지 대추인지 설탕인지 알 수 없는 무엇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복지 차원에서 과일을 휴게실에 둔다. 나는 회사에서 월급루팡이고, 일하는 시간보다 과일 먹는 시간이 더 기니, 사실상 과일을 먹으러 출근하는 셈이다. 보통 바나나, 딸기, 파인애플 등을 먹는다. 사과는 잘라먹기 귀찮다. 파인애플은 잘린 게 온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러다 요즘 발견한 괴이한 존재.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빠져들었다. 매주 먹는다. (회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간다.) 이름은 더달콤 대추방울토마토.


엄청 달다. 설탕에 절인 토마토 느낌이 들 정도로 비자연스럽게 달다. 자연 속에서는 사과도 귤도 달지 않은데, 품종개량을 통해 지금의 당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토마토가 이렇게 달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자연의 산물인 과일이 비자연스러울 정도로 과하게 맛있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니. 과연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무는 맛이다.


대학생 시절 인사동의 한 전통찻집에서 알바했다. 찻집의 이름은 인사동. 마당이 있는 한옥 건물이었다. 마당은 그냥 흙바닥이었는데, 비가 오면 마루에서 보는 광경이 나름 그럴듯한 것이었다. 여름은 팥빙수가 잘 나갔다. 주방에서는 빙수에 올릴 토마토를 열심히 잘랐고, 나는 주문을 전달하러 주방을 들락날락하며 부단히도 토마토를 집어먹었다. 자른 건 먹지 말고 여기 자르기 전 거를 먹어. 친절했던 알바 누나의 지시대로 나는 열심히 토마토를 집어먹었다. 예나 지금이나 토마토는 복지다.


토마토에 독이 있다는 걸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 정도로 힘센 열매에 독이 없을 리가.
 _황정은 「연년세세」
과일가게에서

사과는 복숭아를 모르고
복숭아는 포도를 모르고
포도는 시어 토라진 밀감을 모르고

이렇게 너희는 서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어느 가을날 오후,
부부처럼 만만하게 등을 댄 채
밀고 당기며
붉으락푸르락
한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는구나

 _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일하기에 적합한 신체를 가지고 오늘도 출근한다. 먹히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달달한 대추방울토마토가 와그작와그작 씹어먹힌다.





토마토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가지과에 속한다. MSG의 원료인 글루타민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토마토 자체로 감칠맛이 난다. 요리해먹으면 더 맛있는 이유다. 독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열매보다 줄기와 잎에 많다. 가지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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