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마음 놓고 책을 읽고 즐겼던 때가 언제였던가..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책을 읽는다. 이 지식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 너무 흥분해서, 한장 한장 넘기지만 마음이 급하다. 더 빨리 읽고 싶고, 그냥 먹어버리고 싶다. 책을 와구와구 씹어 삼켜버리고 싶다. 아마 나와 같은 사람들, 책을 읽은 사람이 되고는 싶은데 책을 차분히 읽을 만한 인내심은 부족한 사람들이 속독 관련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 본다. 책이 마냥 쾌락이고 힐링이었던 적은.. 군대였다.
책이 넘쳐나고 책을 읽을 시간도 넘쳐나던 시기가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 막 흥분해 가지고는 책을 10권씩 빌리고 (아마 한도만큼 꽉 채워 빌렸던 것 같다.) 그리고 빌리는 과정에서 내 열정을 다 쏟고, 정작 그중에서는 1권 정도 읽고 반납하곤 했다. (여러 권을 찔끔찔끔 읽었으니까 분량으로 치면 1권 분량 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마냥 재미있는 책을 읽지도 않았다. 뭔가를 얻고 싶고, 지식을 채우고 싶고,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읽었다. 그러니 마냥 행복하기만 한 취미는 아니었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씹지도 않고 급하게 넘기는 것이지, 한입 한입을 음미하면서 먹지는 못했던 것이다.
반면 군대에서는 책 읽을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남들은 잘 시간에 한시간 정도 열람실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연등'이라는 제도로, 신청자에 한해서 자기계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도 충분치 않았다. 도서관도 따로 없었고 우리가 볼 수 있는 책이라곤 같은 생활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책뿐이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 일본 추리소설이다. 미야베 미유키, 미치오 슈스케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정신없이 읽었다. 너무너무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분명 신체가 구속된 상태였고, 행동도 억류되어 있던 때였는데, 오히려 그 속에서 가장 큰 행복과 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생각치 못했던 감정이었다. 부족에서 자유를 느끼는 게 가능하구나. 아니다. 오히려 부족할 때만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책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건 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가시적인 사물들은 어둠이나 침묵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가시적인 것보다 더 가시적인 것, 즉 외설적인 것 속에서 휘발되어버린다.
_장 보드리야르 「치명적인 전략」
넘쳐나는 책 속에서 책 읽는 즐거움은 사라져 버린다. 한병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가시화되기 때문에 오히려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모든 것을 전시의 강제 아래 복속시킨다. 오직 전시적 연출만이 가치를 생성한다. 사물의 고유한 형태는 폐기된다. 사물들은 어둠 속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조명 속으로 사라진다.
_한병철 「투명사회」
어둠이 아니라 과도한 조명 속으로 사라진다라.. 너무 공감이 가는 표현이었고, 책 한권이 떠올랐다.
주의를 집중해 봐요, 이제 전등 스위치를 내릴 테니까, 어디 한번 말해 봐요, 자. 아무런 차이도 없어. 아무런 차이가 없다니, 무슨 뜻이에요. 아무런 차이가 없다니까, 똑같이 하얗게만 보여, 마치 밤이 없는 것 같아.
_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고, 그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다. 쉽고 재미있다. 그냥 재미로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그런데 신기했던 건 사람들이 눈이 안 보이는 방식이다. 어두운 밤처럼 보지 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하얗게 보인다. 넘치는 빛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지금 이대로 살아가자는 거요, 지금은 우리 둘 다 살 수 있는 곳을 가지고 있소, 나는 내 아파트가 어떻게 되는지 계속 주의 깊게 지켜볼 생각이오.
_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넘치는 빛 속에서 오히려 보지 못하는 사람들, 정보가 넘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 이야기다. 그리고 부족함 속에서도, 장애와 고난 속에서도 서로 돕고 산다. 그리고 이대로 살아가자고 말한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인 것 같다.
인간이 사물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사물들의 의미를 없애기 위한 것이죠. 내 이야기들은 일종의 눈감기예요.
_구스타프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카프카는 말했다. 눈을 감아야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오늘날에는 과도하게 가시적인 이미지들의 어마어마한 더미가 눈 감기를 불가능하게 한다. 이미지들의 빠른 교체도 눈 감을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눈을 감는 것은 일종의 부정성으로서 오늘날처럼 긍정성과 과도한 가시성이 지배하는 가속화 사회와는 양립할 수 없다. ... 사색적인 머무름은 결론의 형식이다. 눈을 감는 것은 바로 결론의 표지다. 지각은 오직 사색적인 안식 속에서만 종결을 이룰 수 있다.
_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때로는 눈을 감아야 보인다. 그 바쁜 시험 기간에도 짬을 내서 책상 정리를 하는 것처럼.
*생활관 : 예전에는 내무반이라고 했던 게, 이제는 생활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