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Mar 30. 2020

칭찬인지 조롱인지 박민규인지

_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을 봤을 때는 이 정도로 대단한 팀인 줄 몰랐다. 박민규가 그려내는 삼미슈퍼스타즈는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박치기하는 황당한 팀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만들어져서 대기록을 세우고 내 머리가 커지기 전에 사라졌다.



읽다 보면 박민규의 묘사가 너무 찰진데, 삼미슈퍼스타즈의 팬이 보면,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물론 칭찬이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인천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야구팀이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야 했던 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이때 총 여섯 팀이 만들어졌고, 삼미슈퍼스타즈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길을 걸었다.


좀 쉬었다 하지? 격려의 편지라도 전하고 싶었지만, 투지와 열정의 팀 나의 삼미는 도대체 쉬거나 멈추는 법이 없었다. 노히트 노런을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그해 16연패의 찬란한 위업을 달성하더니, 나아가 그 다음 해에는 인류 공영에 길이 이바지할 18연패의 빛나는 금자탑을 쌓아올려 버렸다. 불멸의 기록이었다. 그 불멸의 기록 앞에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삼미의 라이벌은 삼미뿐"이라는 찬사를 퍼부어주었다. 과연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기록은ㅡ어떤 축구 팀이나 핸드볼 팀이 어느 날 갑자기 프로야구로 전향을 해오지 않는 이상은 절대 깨어질 수 없는 대기록이었다.


인천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삼미슈퍼스타즈를 응원했던 수많은 팬들은 차츰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해진다.


그해의 6월 12일은 삼미의 소년팬들에게 있어 6·25보다 잊을 수 없는 치욕의 날이었다. 어찌 우리가 그날을 잊을 수 있겠는가. 두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던, 아니 막아내지 못했던 그날의 경기를. 삼성에게 20점이라는 1게임 팀 최다 득점 기록과, 27개라는 1게임 최다 안타 기록과, 9개라는 1이닝 최다 안타 기록을 동시에 안겨준 그날... 3루타와 2루타, 1루타를 친 삼성의 오대석이 설마 했던 6회 때 투런 홈런을 터트리며 국내 최초의 사이클 히트를 기록하던 그 순간ㅡ나는 실지로 3루타성 눈물과, 2루타성 눈물과, 1루타성 눈물과, 두 줄기 콧물을 동반한 투런 홈런성 눈물을 차례차례 터트리며 국내 최초의 사이클 눈물을 기록했고, 이미 눈물이 마른 조성훈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쭈쭈바를 빨며 하염없이 천장을 쳐다보았고, 다혈질의 다른 친구는 마당으로 뛰어 내려가 자신의 눈에 흙을 뿌려댔다.


붙이지 않을 수 없는 포스트잇


나는 야구를 안 본다. 그래서 야구 용어는 전혀 모른다. 모르면서도 빠져들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 책이다. 이런 책을 만들어낸 박민규에 감탄했다.



재미있는 부분만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나름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다. 한두 문장으로 요약하면 별 거 아닌 주제다. 어찌보면 약간은 유행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책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주제를 이렇게 화려하고 지저분하게 그려내는 책은 본 적 없다. 이 소설을 영화로 그렸을 때 이 웅장한 느낌은 사라질 것이다. 이 글을 음악으로 만들었을 때 박민규의 어법과 문체는 찾아보기 어려울 거다. 미술이든 방송이든, 그 어떤 매체도 재현해낼 수 없는 예술을 본 기분이다.



★★★★★ 자유주의와 맞서 싸운 삼미! 자기계발과 맞서 싸운 박민규!




아티스트 지인이 만들어준 양장 표지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도 지쳐서 저절로 아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