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Apr 01. 2020

수능이 연기되면 약을 먹어야 한다

_이다혜 「출근길의 주문」

여성이 쓴 글이고, 여성이 읽는 글이다. 기자면서 자신의 글도 쓰고 방송도 하는 이다혜 작가가 직장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여성 직장인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성 독자가 아니어도 읽는 의미가 있다. 우선,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몰랐던 부분을 알수 있다. 생리와 관련한 이야기는 평소에 전혀 들을 기회가 없어서, 신기했다.


생리


포항에 지진이 나서 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었을 때, 많은 여성들은 시험 기간에 맞춰 생리주기를 조절하기 위해 약을 먹고 있었을 수험생을 걱정했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런 방법을 택하니까.


수능 때는 그냥 잘 자고 잘 먹고 컨디션 조절을 잘 하면 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다들 생리주기 조절약을 먹고 있었다니. 젠더 문제가 나오면 득달 같이 달려드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쩌면 무지로 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알면 알수록 미워할 수 없는 거니까.


몰랐던 점을 알려주고, 다르다는 걸 확인하기도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여성의 이야기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주류나 엘리트가 아닌 사람이라면 나름의 공감을 하게 된다.


말하기


발언기회를 가지면 갑자기 긴장해서 말이 빨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주목 받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어쨌거나,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면서 상대에게 내 이야기를 들리게 하는 경험 자체가 여성의 성장기에 존재하지 않는 영역인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사람들이 주목하면 겁이 나서 말을 빨리 해버린다. 반면 눈치 없이 할 말 안 할 말 다 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


사회생활하며 '높은 분'을 만날 때,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답 없는 질문에 빠질 때가 있다. 높은 분들은 높은 확률로 남성이고, 그들은 본인의 tmi로 시작한다.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혼자 웃어가면서, 오늘 날씨가 어떻고 주말에 낚시를 갔는데 수확이 어떻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뭐가 문제고 하는 이야기를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늘어놓는다.


이런 분들은 그래서 말솜씨가 늘지 않는다. 어떻게 말해도 다들 알아서 리액션 해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태도에 관하여」가 생각났다. 공교롭게 같은 출판사다. 베스트셀러인 데다 많은 분들이 추천해서 읽었는데.. 표지는 아주 좋았지만, 표지만 좋았다. 반면 이 책은 표지는 정말 별로였지만, 내용은 그걸 잊을 정도로 좋았다. 이다혜 작가는 글을 쉽고 간결하게 쓰기도 하지만, 독특하고 찰진 표현들을 사용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


우리는 용의 꼬리나 뱀의 머리를 고민하지만 현실은 이름 모를 파충류의 군살 정도의 인생을 산다.
여자들은 침묵을 채우는 일을 요구받지 않았을 때도 요구받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라는 요구는 특히 조직의 가장 연차 낮은 여성들에게 집중된다. "넌 여자애가 부드러운 맛이 없냐" 같은 난데없는 맛타령도 그런 때 벌어진다. 그러는 님이나 부드러운 맛을 내보시든가.
젊은 직원들이 회사에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때는, 업계의 미래를 뜻하기도 하지만 윗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여성이 높은 자리에 있는데 일을 잘하면 '여성적 리더십'이라고 부르고, 일이 산으로 가면 갑자기 인간에서 암탉으로 격하된다.


★★★★★ 일하는 사람들의 지침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