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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pr 02. 2020

제목은 아름답다

 _신중섭 「경쟁은 아름답다」

나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그런지 경쟁이 바람직한 선택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를 좋아하고 사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여전히 독과점은 나쁘고, 선택권 보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다. 경쟁과 관련한 인문학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서문에서부터 발견된 단어는 바로 '자유경제원'이었다.


자유경제원이라니. 우리나라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오염시킨 주범 아닌가. 독재를 찬양하고, 대기업을 옹호하는 논조를 꾸준히 유지하며, 노조 때려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가끔씩 외치는 단체가 바로 자유경제원이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뉴라이트라 부를 수도 있다. 스스로는 자유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재산권에 대해서만 자유주의를 취사선택하고, 그 외 부분에서는 극우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바로 그 자유경제원이라니, 제목만 보고 책을 고른 스스로를 위로하며 책을 덮었다... 가 궁금해서 조심조심 읽었다. 경쟁을 긍정적으로 판단한 사상사들을 소개한다.


임마누엘 칸트


칸트는 경쟁 자체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철학자는 아니지만, 나름의 역할을 인정했다. 이를 '반사회적 사회성'이라고 하는데, 이른바 경쟁심, 소유욕, 지배욕 같은 감정들이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고, 결과적으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아담 스미스


경쟁을 본격적으로 찬양하기 시작한 사상가는 아담 스미스다. 자유로운 경쟁은 효율성을 높이고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더라도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겠지만, 경쟁 자체가 없던 시대와 비교하면 그나마 기회가 보장되는 편이다.


찰스 다윈


신자유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다윈도 빠지지 않는다. 강한 자가 승리하는 게 아니라, 적응력이 뛰어난 종이 살아남고 번성한다는 이야기다.


조지프 슘페터


자본주의에서 경쟁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경쟁을 통해서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나은 문화가 만들어지고 월등한 기술이 개발된다는 논리다. 결국 소비자들이 혜택을 받는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진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경제학자다. 경쟁을 발견의 절차로 본다. 더 좋은 지식이나 더 좋은 방안을 찾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절차가 경쟁이라는 의미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스윽스윽 자유롭게 넘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동 파트가 나오자 저자는 힘을 준다. 노동자들의 조합 결성은 경쟁을 막으니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뜬금없이 외친다. 아마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쓴 책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짜증과 분노가 앞다투어 올라와서 책을 덮었다... 가 뒷부분이 궁금해서 계속 읽었다.


저자는 이어서 복지를 비판하며 대안으로 자선을 강조했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세금으로 돕지는 말고, 개인이 자선을 베푸는 게 맞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결국 마지막까지 마저 읽었다.


저자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관심이 많은 철학자다. 꾸준히 전교조를 비판하고 공동체 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와 시장을 옹호하는 글을 써왔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였으나, 중학생도 갸웃할 정도로 별 내용이 없다. 경쟁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적당히 적어놓은 책이다. 독자를 설득하려고 했다면 이런 글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유경제원의 마음을 훔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계속 살아남는 경쟁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책 제목이 좋다고 고르는 독자는 아마 나 정도일 거다. 알맹이가 없는 책을 꾸욱 참고 끝까지 읽은 독자도 아마 나 정도일 거다.


★★★★ 이런 책으로 털 수 있는 지갑은 겨우 내 지갑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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