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겅질겅 내 삼십대

by 이태원댄싱머신

내 이십대를 씹었다. 내 삼십대도 질겅질겅 씹었다. 퉤 하고 뱉었다. 사업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취업이 되는 전공을 선택할 걸 그랬나. 너무 잠깐만 씹고 뱉어버렸나. 단물이 다 빠질 틈도 없이 지나간 듯하다.


이십대. 내 앞에는 나보다 어린 애들이 많았다. 애들 코 닦아주며 자랐으니, 스스로 어른인 줄 알았다.


삼십대. 내 앞에는 책이 놓여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비슷해질 수 있을까. 어른인 척을 그만두어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사십대. ...


삼십대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러 침만 밷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_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그래도 아직 내 앞에서 코 흘리는 애들 많다. 코 닦아주며 어른인 척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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