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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pr 10. 2020

비가 이렇게 오는데 물부족 국가라고?

주기적으로 언론 한국을 물부족 국가라고 말한다. 마치 확실한 근거라도 있는 것처럼, 연구소 이름까지 들이댄다.


과연 우리나라는 물이 풍족한 나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은 물 부족 국가이다. 2003년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는 한국을 물 스트레스 국가, 즉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하였다.
‘물 부족 국가’는 재생 가능한 수자원의 양이 1인당 1000㎥ 이상 ∼ 1700㎥ 이하인 국가로, 한국은 1인당 활용 가능한 수자원 량이 1452㎥여서 물 부족 국가에 포함이 된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러한 물 부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_경남일보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 2019-07-04


맞다. 기사에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 물부족 국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물이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국제인구행동연구소'다. 이름에 '국제'라는 그럴듯한 단어도 들어가지만, UN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그냥 사설 단체다. 이 사설단체에서 우리나라를 물부족 국가라고 읊조리자. 자극적인 가짜뉴스를 찾아헤매던 언론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국제인구행동연구소는 수학에 재능이  있지, 강수량을 단순히 인구밀도로 나눴다. 그걸 가지고 물기근 국가 / 물부족 국가 / 물풍요 국가로 나누었을 뿐이다.


나도 '국제가짜뉴스방지연구소'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사설단체 하나 만들어서 우리는 물부족 국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UN이 이미 발표했으니 참는다. UN의 기준에서는 물부족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물이 풍부한 편이다. 물에 석회 성분이 많이 포함된 유럽에서는 맥주를 마신다. 수질이 좋지 않은 중국에서는 차를 마신다. 우리는 아리수를 그대로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수자원의 질도 양도 뛰어나다.


깨끗한 물부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하루 5000명의 어린아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UN이 지정한
"물부족국가" 입니다.
우리의 희망과 같은 아이들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소중한물 지키고 보전합시다.
 _공익광고협의회 한국방송광고공사


한동안 자주 보던 공익광고다. 가짜뉴스 하나에 언론도 속고 정부도 속고, 다 속았다. 4대강 사업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물은 아껴써야 할까?

아니면 펑펑 써도 될까.


물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떠올려보자. 물의 순환은 시작과 끝이 없다. 태양은 지구를 덥히고 물을 증발시킨다. 공기 중으로 올라간 수증기는 차가워지면서 구름을 이루게 된다. 구름이 돌아다니다 서로 충돌하면, 비 내리게 된다. 이 비가 우리나라에 내리게 되면 이제부터 우리 강수량이라 부를 수 있다. 이제 이 비를 정수한다. 응집이니 침전이니 여과니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물을 깨끗이 만든다. 이 물을 상수도관을 통해서 각 가정으로 전달되고, 우리가 수도꼭지만 틀면 바로 만날 수 있다. 사용한 물은 하수도관을 통해서 내려간다. 다시 정수 과정을 거쳐서 강으로 바다로 나가고, 같은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한다.


우리가 이 물을 아껴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을 쓴다고 해서, 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바다로 간 물은 다시 비가 되어 내린다. 물을 쓴다고 해서, 물이 오염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물은 맑아진다. 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하늘에 내린 비를 정수해서 바다로 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거다. 물, 펑펑 써도 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하루종일 수도꼭지를 틀어놔도 좋다. 공기청정기를 야외에서 틀면 세상의 공기가 아주 조금 깨끗해지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물도 아주 조금 깨끗해질 거다.


이렇게 과장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물을 적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1인당 기준으로 따진다면, 프랑스는 우리의 2배, 이탈리아는 5배, 호주는 우리의 15배를 쓴다. (2008년 기준이다)



가짜 뉴스는 적게 쓰고, 물은 펑펑 쓰자.


구름을 보면 나는
아직도 내 앞에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강물을 보면 파도를 보면 나는
아직도 내 앞에
출렁거릴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_이기철 「유리(琉璃)의 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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