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치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Apr 24. 2020

보수당의 몰락은 보수 유권자가 자초했다

유래 없는 총선 결과다. 민주당의 압도적인 승리, 보수당의 일방적인 패배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의 승리 요인. 대통령의 지지율이니, 외신의 반응이니, 선거 효능감이니 하는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보수당의 패배 요인. 막말 의원이니, 보수 유튜버니, 어설픈 당대표니, 잘못 잡은 선거 전략이니 하는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다 맞는 말이다. 이유는 하나가 아닐 거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권자에게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보수 유권자가 보수당을 망쳤다.


막말


이번 총선 시기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막말 정치인은 주로 보수당에 있다. 보수라고 해서 막말이 친숙하지는 않을 텐데, 이상한 일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쓰리썸을 했다는 카더라 통신을 무슨 진실 폭로하듯이 떠벌리는 차명진. n번방에 들어간 가해자를 호기심에 들어갈 수 있다며 변호하는 황교안. 대통령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비난을 멈추지 않는 민경욱. 이 사람들이 전부 보수당 정치인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선택


민주당 유권자들은 선택을 해왔다. 20대 총선, 안철수가 믿을만하다고 판단했을 때는, 신생 정당에게 표를 몰아줬다. 호남 지역구는 국민의당이 거의 독식했고, 비례대표 2등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판단을 했다. 21대 총선,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했던 민생당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민생당은 단 한 석도 얻을 수 없었고, 원외정당이 되어버렸다. 고양시나, 창원시의 경우는 정의당 후보를 뽑기도 한다.


 *원내 교섭단체 : 국회의원이 스무 명 이상이어야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그만큼 국회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국민 10퍼센트의 지지를 받은 정의당도 원내교섭 단체를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손가락만 빨고 있다. 국정원 보고를 받는 것도, 표결에 대해 합의하는 것도 원내교섭단체의 권한이다.


선택


보수당 유권자들은 선택을 해왔을까. 보수당 유권자가 민주당을 찍거나, 정의당을 찍을 수는 없다. 그 반대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보수정당 사이의 경쟁 구도는 충분히 만들 수도 있는데, 보수당 유권자는 대안을 철저히 외면해왔다. 국정농단을 비판하며 합리적인 보수의 길을 걷고자 사람들이 있었다. (이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유승민을 비롯한 서른 명의 국회의원은 새누리당을 나와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보수당 유권자들은 이들을 응원하며 경쟁 구도를 만든 게 아니라, 배신자 딱지를 붙였다. 마라톤과 의료봉사로 존재감을 과시했던 안철수도 국민의당을 다시 만들었다. 보수로 옮긴 후 국민의당이 21대 총선에 받은 성적표는 겨우 3석이었다.


경쟁


민주당 국회의원은 이상한 말을 하기 어렵다. 인격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다. 잘못하면 유권자들이 정의당을 뽑거나 민생당을 뽑을 수 있다. 그래서 공천받기도 어렵다. 경쟁이 이루어질 때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면이다.


경쟁


보수당 국회의원은 다르다. 보수당 텃밭에서 공천 받으면 된다. 공천 받으면 당선이다. 경쟁이 없다. 그래서 유권자보다 공천권에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정치적 경쟁도 시장에서의 경쟁과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수많은 비용과 인력을 통해 휴대전화의 성능과 디자인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은 왜일까? 소비자의 마음을 끌지 못하면 언제라도 경쟁자에게 시장을 빼앗기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 경쟁에서는 소비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잘 나가던 기업이라도 다른 경쟁자에게 밀려 도태될 수 있다. 끊임없이 기업이 내부적으로 기술적, 조직적으로 혁신을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치적 경쟁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한다.
어떤 정당이 아무리 오랜 기간 동안 주도적 위치에 있었더라도 시대적 변화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유권자의 요구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도태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경쟁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스스로 혁신하지 않는, 유권자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당들은 정치적으로 도태된다. 그러나 지금의 거대 양당처럼 정치적으로 아무리 욕을 먹는다고 해도 선거 때마다 거의 100석 가까이 보장되는 상황에서는 내부 혁신이나 변화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게 된다. 독과점적 상황에서는 정당정치가 바뀌지 않는 것이다.
 _강원택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이제라도 보수당 유권자는 선택을 해야 한다. 안철수와 홍준표, 유승민과 조원진이 경쟁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진다면, 막말 정치인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가 이렇게 오는데 물부족 국가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