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유목민 「나의 월급 독립 프로젝트」
내가 주식 책을 다 읽다니... 주식이라면 차익을 통해서 이득을 보는, 지대 추구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물론 부동산 투기만큼 세상에 해악을 끼치지는 않지만, 주식 투기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대 추구, 즉 사회적 낭비로 분류된다. 마찬가지로 주식 투기를 통한 수익은 불로소득이다. 적어도 경제학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고,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동의하게 되었다. 이 생각이 바뀐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의 찌든 때가 묻어가는지, 이번에 주식 책을 빌려 읽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사지는 않았다.)
재미있게 읽었다. 구체적인 방법론이 절반 이상인데, 실전 경험이 없다보니 그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흥미로웠다. 주식을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타
채사장의 「지대넓얕」 팟캐스트를 들었기 때문에, 단타가 수익이 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채사장은 실제로 단타를 했었고, 수익률도 높았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오래 묵혀두는 장기투자는 개념 있는 가치투자라 생각하고, 빨리 사고 빨리 팔아치우는 단기투자는 원칙 없는 투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둘 다 경제학에서는 투자로 보지 않는데도 말이다.
막연히 단타가 수익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유는 몰랐다. 알고 보니 한국과 미국의 차이였다. 미국은 주가가 계속 오른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던 금융위기를 제외하고 계속 올랐다. 그래서 오래 묵혀두어도 오른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박스 안에 있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지도 않고,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장기투자로 수익을 내기 어렵다.
사실 기관도 단타하는데, 개미가 장투라니... 그건 "나 주식 못해요." 하는 소리입니다. 워런 버핏도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단타로 성공했을 겁니다.
뉴스
흔히 테마주는 사기라고 하는데, 저자는 테마로 돈을 번다. 안철수가 대선 후보가 된 걸 보고 안랩 주식을 사면서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당연히 저자는 한 발 빨리 발을 내딛는다. 예를 들어 가뭄이 되었다고 한다면, 저자는 먼저 인공강우를 떠올리고, 그 다음에 인공강우를 일으키는 데 드라이아이스가 필요하다는 것까지 떠올린다. (이것도 다 지식이다.) 그리고 금융감독원 사이트(흔히 다트라고 부르는 거기)에서 드라이아이스로 검색하고, 여기서 찾은 회사들을 조사해서 주식을 산다. 하루이틀 지나면 다른 사람들도 이 소식을 알게 되고 뒤늦게 하나둘 주식을 살 때 즈음 저자는 판다. 이렇게 며칠 안에 5퍼센트, 10퍼센트 수익을 내는데, 투자 금액이 수억 원이니, 수익도 수천만 원이다. 오래 걸려도 5일 안에 팔아치운다. 한달이면 억 이상 번다. (주식 가격이 박스권 안에서 변동하니, 누군가는 결국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셈이다.)
직장인
주식으로 매달 억 소리 낼 수 있다면, 누가 회사를 다니겠나 하지만, 저자는 회사를 계속 다니라 한다. (물론 나중에는 관뒀지만) 출퇴근하면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어차피 전업 투자자로 나서도 쉽지 않다. 자신이 하는 일과 주식을 연결하는 데도 유리하다. 퇴근하고 나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오전에는 1시간, 적어도 30분만 낼 수 있다면, 단타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도 매일 오전 9시부터 9시30분까지 시간을 내서 투자했다. 유연 근무제라서 9시30분부터 출근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매일 아침에 시간을 못 내면 단타를 포기해야 한다.
예수금
코로나19로 인해서 주식시장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있었다. 동학개미운동이라며 계좌 하나 없던 개미들도 앞다투어 주식에 뛰어들고 있다. 1월에 6만원 하던 삼성전자가 코로나19가 극성이던 3월에는 4만원까지 내려갔다. 4월인 지금은 5만원이다. 즉, 3월에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4월에 팔았다면 어마어마한 수익을 낼 수도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내 주변의 주식 투자자들은 모두 국산차 한 대, 혹은 수입차 한 대를 날렸다. 그 이유는 이미 주식에 몰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에게 감탄했던 부분도 여기다. 5일 안에 단타로 치고 빠고지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금액은 예수금 상태로 있다. 수십억이 계좌에 있어도, 실제 주식은 1~2억만 거래하는 방식이다. 분명 저자는 이번 코로나19 기간 동안 수십억을 불렸을 거다.
조장
금융 책이 대부분 그렇듯, 위기감 조장은 빠지지 않는다. 월급쟁이로 살면 안된다, 돈 더 벌어야 한다, 주식 투자 안하면 큰일 난다, 호들갑이다.
아무튼, 연봉 1억의 능력자가 10년 내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모은 2억 4000만 원, 이 돈으로는 서울 시내에 있는 번듯한 아파트 전세도 얻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월급으로 부자가 될 수 있었어요. 이자율이 18%에 육박했으니까요.
실전
실전에 대한 내용은 지루하기도 했지만, 지지와 저항에 대한 전략은 놀라웠다. 까막눈이 차트를 보면 언제 올라가고 언제 내려가는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저자는 그게 보인다. 주가가 내려가더라도 더이상 내려가지 않는 지지선이 있다. 반대로 주가가 올라가더라도 더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저항선이 있다. 그리고 이 지지선이 한번 깨지면 저항선이 된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주식을 보니, 이제 올라갈 때가 되었구나 하는 감이 오는 것이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니 큰 돈을 배팅할 수 있다. 운도 중요하겠지만, 실력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사고 파는 게 어떤 것인지 살짝 맛볼 수 있었다.
1) 내가 사야 할 지점은 지지선을 깨지 않는 것을 확인했을 때
2) 내가 팔아야 할 시점은 저항선을 못 뚫고 내려앉을 때
3) 저항선을 강력하게 뚫었을 때는 사야 할 시점
일부가 이정도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별별 전략이 다 있다. 실제 업체 주가를 예로 들어서 보여준다.
굉장히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회사들 주식을 사고 팔아야 돈을 벌기 때문에, 저자는 매일 몇 시간씩 공부했다고 한다.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것을 알았으니 일단 주식에 손을 댈 엄두는 나지 않는다. 몰랐던 세계를 살짝 엿봤다는 점에서 만족하련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성공을 자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배고파 한다. 한편으로 (아주) 부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쌍하다 (그닥).
★★★★★ 매달 벌어들이는 어마어마한 수익의 규모도 놀랍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의 규모는 더 놀랍다.